“내가 포항에 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경기가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다” 한 중소기업가의 토로다. 국내 재계 서열 6위인 포스코가 경기 침체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포스코의 현실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올 3분기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나 줄어들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세계적 전자기업인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누적되는 적자를 메울 마땅한 방법이 없는데다 장기적으로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 신용등급도 하락하고 있다. 시장과 업계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판단 잘못 때문이다. 이런 판에 지금 세계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국내 삼성전자를 주목한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한 것은 1993년이었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바꿔 호령 이후 내부적인 혁신을 거듭했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3류 취급을 받던 삼성 제품이 품질을 높여 현지인들의 인식 자체를 바꾼 것이다.
이듬해인 1994년 애니콜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휴대전화는 18년만에 세계 1위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해 165조원의 매출과 16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런데 올해는 9월까지 3분기에만 145조원의 매출액과 20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혁신이 이뤄낸 성과다.
이 회장의 혁신 바람은 1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도 기업 경영에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혁신 선풍을 몰고 왔다. 그런데 이런 혁신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정치에서 그렇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에 실망하고 분노한 민심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새로움, 시장은 늘 새것을 찾는다. 새로운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 구시대의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면 실패한다. 혁신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이 격언은 선거에서도 유효하다. 새 인물에 대한 기대가 안철수 현상을 불러왔다. 문재인도 당내 기라성같은 초초맹장들을 젖히고 대통령선거 후보를 거머쥐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압력을 즐기고 있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혁신을 조건으로 내건 것도 그 때문이다. 김한길 민주당 최고위원이 “안철수 후보도 깜짝 놀라고 우리도 너무하다는 정도의 쇄신안을 쏟아내야 한다”고 일갈한 것도 정치 역학 이외에 그런 요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외연을 넓히고 지역과 세대를 통합한다며 오히려 옛날 사람들로 채우고 있다. 세련되고 화장발 받는 기성 정치인보다 차라리 맨얼굴의 지방 출신이 과감히 중앙무대에 진출하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순수하고 촌스러움이, 오히려 닳아빠진 기성 정치인들보다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도 있을 텐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한 포럼에서 정책보다 자신의 비키니 사진에 더 흥미있어 하는 언론에 불평을 토로했다. 노래방에서 노래 시켜놓고 옆사람과 이야기한다며 정책에 관심 없음을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책보다 비키니에 관심을 보내는 민심을 읽어야 한다. 비키니처럼 산뜻하고 혁신적인 무엇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지금 후보들의 논쟁을 보면 깃발만 있고 군대는 없는, 마치 구호만으로 국민들을 휘어잡으려는 선동 같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렇게 바꾸겠다”는, 국민들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40여일 남은 대선에서 후보들이 후보가 되기까지의 성공담은 잊고 얼마나 혁신적인 정책을 내놓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