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는 아주 신이 났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북한군은 남측의 3중 철책을 싱겁게 넘어서서는 우리 측 전방 소초(GOP) 내무반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정승조 합참의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몇 차례나 CCTV를 보고 확인했다고 보고했다며 그것 봐라는 투로 덧붙였다.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 무슨 소린가. 북한군 병사가 철책 군사분계선을 넘어, 지뢰밭을 지나 우리 측 소초까지 오도록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고 그래서 어떤 제재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북한군 병사가 귀순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목적을 갖고 침입했다면 결과는 어찌 됐을까.
그런데 여기자의 리포트는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이 사건을 전하는 여기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새벽잠을 깨웠다. 나는 뉴스를 듣는 순간 지금 전방 초소에 근무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초롱한 눈망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군대도 안 가 본 여기자의 신이 난 듯한 리포트가 한없이 야속하게 들렸다.
군대 가서 제일 먼저 듣는 말이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맥아더 장군이 했다는 경계의 중요성이다. 작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계의 중요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만큼 경계가 중요하면서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GOP.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에 있는 전방 경계소초. 근처에 민간인은 아예 없다. 그러니 하루 종일 같은 소초원 얼굴만 쳐다보는 곳이다. 그곳에서 경계를 서는 초병들의 생활은 따분하고도 외롭고 힘들다. 그곳에서 시간은 시계 바늘에 납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더디다. 그렇다고 보초를 소홀히 서도 괜찮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더 전방이 있다. 이른바 최전방 초소인 GP가 그곳이다. 낮과 밤이 뒤바뀌어 생활하는 곳이고 장교들도 버티기 힘들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필자가 군 생활하던 시절엔 북에서 넘어온 침입자가 GP에서 잠자던 1개 분대원들의 목을 따서 가마니에 담아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은 우리 쪽에서 북으로 넘어가서 보복을 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 곳이다.
군대생활은 사실 힘들고 괴롭다. 어떤 대통령은 청춘을 썩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군에 가지 않으려고 각종 불법이나 부당한 방법이 동원되고, 결국 사법처리 되는 대한민국 청춘들이 잊을 만하면 나타나곤 한다. 최근엔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일부러 뛰어들어 자해를 했다가 엉뚱한 계기로 범행 기록이 공개되는 바람에 구속된 젊은이가 나오기도 하지 않았나. 그만큼 가기 싫고 또 힘든 곳이 군대라는 곳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경계를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은 일파만파 자꾸만 확대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별이 떨어졌고 더 많은 군인들이 이 사건 이후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이번엔 장관과 합참의장의 사퇴 요구까지 나오는 판이다. 해결책이 못된다. 그렇다고 경계를 허술하게 해도 용서하라는 말은 아니다. 징계보다는 군의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방 경계 시설을 보강해야 한다. 철조망을 더욱 보강하고 CCTV도 확실히 챙기고 로봇 순찰도 빨리 실현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군 복무를 줄이고 군생활을 더 편하게만 만들겠다는 일부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경계한다. 대신 전방에 근무하는 장병들의 대우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 그래놓고 꾸짖어야 한다.
군대 간 것만도 억울한데 거기서 불이익까지 당하는 이중 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군대 붙잡혀 가는 사람과 군대 지원해서 가는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다음 처벌해야 한다. 병사는 죄가 없다는 군의 판단을 존중한다. 장병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