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인데 뭐 어때?” 금고털이 전문 펩시가 면도칼로 핸드백을 찢는다. 그리고 한 말이다. 마카오 박이 5초 안에 핸드백을 열면 원정 다이아몬드 도둑 팀에 끼어주겠다고 하자 `3초`라고 되받으면서다. 그렇다. 도둑이다. 올 여름 극장가를 달구었던 영화 도둑들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관객들에게 떳떳하게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는 너나 또 방법을 따지지 않은 나도 도둑이기 때문이라고 뻔뻔스럽게 얘기한다. 도둑이 언제 의리 찾고 도덕 윤리 따지게 생겼나? 도둑에게 그런 따분한 룰이나 원칙을 따지는 건 넌센스다. 도둑이니까.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이니까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룸살롱 출입이 언론에 등장했다. 출마 선언도 하지 않았지만 선관위조차도 그를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그는 하찮은 일거수일투족이라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술자리는 옛날부터 말썽이 있는 아슬아슬한 자리다. 절영이라는 고사도 술자리에서 기인한다. 초나라 장왕이 주연을 베풀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다. 이 틈을 타 한 장교가 장왕의 애첩을 껴안았다. 여인은 잽싸게 사내의 갓끈을 잘랐고 그걸 장왕에게 들이민다. 갓끈이 끊어진 자가 자신을 희롱했으니 처벌하라고 고자질한 것이다. 그러자 장왕은 술자리의 모든 신하들에게 갓끈을 자르라고 명한다. 목숨을 구해주고 충성을 얻은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마지막은 술자리에서 끝났다. 궁정동 안가라 불리는 곳에서 심복인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술판을 벌였다. 당시 남쪽에서부터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 일로에 있을 때였다. 술자리에 여자도 있었다. 대통령이 구태여 요정이나 룸살롱을 찾아 갈 필요가 없도록 아예 술집을 차려 놓았던 셈이다.
안 원장에게 룸살롱을 트집잡는 것은 룸살롱에 간 사람은 대통령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긴가. 대통령 할 사람은 룸살롱 같은 곳에 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보다는 룸살롱도 안 가본 사람이 대통령 되겠다는 것이 이야기꺼리 아닐까. 물론 대통령 직무 수행능력이나 세계관 같은 고차원적 검증은 제쳐놓고 하찮은 룸살롱 타령이냐고 불만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안 원장이라면 다르다.
그로서는 좀 더 진지한 언론 검증을 받고 싶겠지만 매사를 명쾌하게 처신하지 않은 그의 탓이 더 크다. 그의 룸살롱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된 듯하다. 안 원장은 1998년 이전에는 유흥주점에도 가고 술도 마셨지만 이후 10여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사업상 술자리에 간 적은 있어도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룸살롱이 어떤 곳이냐는 듯 딴전 피우던 처음과는 상당히 진전된 모습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떳떳하고 당당하게 대응했더라면 이런 오해도, 논란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원칙이 최대 강점이듯 안 원장에게는 도덕성이 무기다. 그런 점에서 안 원장의 룸살롱 논란이 국민들에게는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매사를 객관화하고 자신은 강 건너에서 여유롭게 구경하는 모양새를 보인 그여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안 원장이 룸살롱 논란에 거짓말을 했다면 대통령 자격의 심각한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젠 룸살롱에서 발전해서 룸살롱 여인이 등장하고 경찰의 사찰설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그런 무게를 뒷받침한다. 어쨌든 이번 룸살롱 논란이 안 원장을 신비주의 프레임에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안 원장 스스로도 이젠 객관적 검증을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