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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사내가 부러운 이유

등록일 2012-06-11 21:23 게재일 2012-06-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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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사회학자들 중에는 현대를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광기의 시대`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내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진정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라는 말이다. 난삽하고 형이상학적인 학술 용어를 들이댈 것도 없다.

통합진보당이 결국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제명했다. 당론과 당명에 따를 의무를 위반했다며 당적을 박탈한 것이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이 이들에게 지금이라도 사퇴하면 당원으로 남을 기회가 있다고 설득했지만 결과는 기대할 바가 없어 보인다. 어쨌든 당내 후보 경선 과정에서의 부정행위가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로 진전됐지만 이 사태는 색깔론으로 번지고 있다.

색깔론. 그럼 당신은 무슨 색깔이냐? 당장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이 무슨 유신시대냐고. 유신의 딸 아니냐며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분명한 평가를 요구한다. 심지어 김두관 경남도지사 같은 사람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누리는 부와 신분도 대물림 받은 측면이 강하다”고 한 술 더 떴다.

그 시절에 여러 차례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감옥을 살기도 했던 이석기 의원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제명 절차를 밟겠다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야당은 후보 경선과정이 문제였지 그들의 과거 종북 사상에 있지 않다고 반발한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공천해서 당선까지 시켰던 김형태 문대성 의원은 어떡하느냐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눈을 돌려 세계를 보면 이웃 중국은 만리장성을 기존의 길이보다 2배도 더 늘려 발표했다. 동쪽으로는 옛 고구려와 발해땅까지 연장했다. 총 길이가 물경 2만1천196km. 종전 6천300km로 알려졌던 장성의 길이를 2009년 새로 측량했다며 2천500km 늘어난 8천851km라고 발표했는데 이번에 또 늘린 것이다.

더 멀리로는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불러 온 유럽의 재정 위기가 스페인을 거쳐 독일로 확산될 조짐이라는 보도다. 독일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유로존에서 안전지대다. 이는 그리스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스페인의 국채를 대량 보유한 독일로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영향이 없을까. 청와대가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여당도 개원하면 당정협의회를 갖고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지난 주 하늘에서는 금세기 최대의 우주쇼가 펼쳐졌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금성이 해와 지구 사이에 끼이는 일식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쇼를 보려면 적어도 105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세상사와는 상관없이 지난 주 포항에서는 포항항 개항 5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축제가 열려 잠시나마 시민들이 시름을 벗어나게 했다. 형산강 둔치에서, 장기면에서, 또 북부해수욕장 해변에서 달리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축제는 초여름 세상사를 잊게 만들었다. 세상 고민 몰라도 즐겁고 신나는 인생이다.

러시아 유머가 생각난다. 금슬 좋은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축하연을 벌였다. 주위에서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사이좋게 살았느냐고?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결혼 초부터 부부가 분명하게 업무분장을 했다. 자식들 교육이나 가정 살림, 집안 문제는 아내가 맡고 세계 핵 감축 문제, 아프간 파병 문제, 목성 탐사계획 등 굵직한 이슈들은 내가 맡기로”

그렇구나. 남자가 살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면 쌓여가는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의 평화와 일신의 평안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구나. 유로존의 위기도 상관 않고 종북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채 일상의 쪼잔한 일에나 신경쓰는 범생이처럼 한심한 사내가 부러운 이유다. 포항 축제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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