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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그리고 욕과 학교폭력

이경우 기자
등록일 2012-02-27 21:38 게재일 2012-02-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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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비록 영화지만 너무 현실감 있고 친숙하기까지 하다. 천박하고 야비한 인간관계가 여과 없이 공개되는데 그 수준이 정제되지 못한 날것 그대로다. 남녀의 신체 부위가 거침없이 열거되고 성을 도구로 한 언어폭력과 천박한 표현들이 편집을 거치지 않고 생으로 공개된다. 영화를 재미있다고 한 사람들은 모두 영화 속 주인공의 욕 퍼붓는 장면들에 속 후련해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카타르시스라기보다 배설일 것이다.

요즘 화제의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를 들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그냥 토크쇼, 사우나에서 나누는 보통 사람들의 잡담이다. 나름 세상을 안다는 사람들이 정치권, 그것도 집권 세력을 향해 풍자와 야유를 뒤섞어 마구 주먹질해대는 일종의 집단 배설행위다. 거기 출연하는 인사들의 면면이 전직 국회의원과 기자 등 배울 만큼 배운 인사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잡놈`이라 겸손(?)해 하지만 그마저 일종의 지적 우월감의 다른 표현이다.

그들의 방송 주제가 남북회담, 정당, 선거 등 무거운 시사 이슈들인데 비해 어투는 너무나 경박하다. 물론 그들 스스로 밝힌 방송 목표가 `가카와 그 팔들을 열 받게 하는 것`이라지만 편집 없이 생으로 내놓는 방송엔 말 중간에 감탄사나 어조사로 욕이 들어간다. 거의 의식적으로 해대는 그 욕이 `나꼼수`의 인기에 한 몫 한 것임에 틀림없다. 한 문장에 많게는 두세 번씩 접미사로 때로는 감탄사로. 마치 판소리의 애타는 대목에서 고수가 추임새를 넣듯 욕을 해대는 것이다.

학교 폭력이 장난이 아니다.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불거진 학교 폭력은 전수조사로 그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인데도 신문 사회면은 온통 학교 폭력기사로 도배를 해야 할 판이다. 중고생 폭력에는 어김없이 욕이 뒤따른다. 지난 해 동급생을 괴롭혀 유서를 남기고 자살케 한 중학생들도 자신들의 대화 녹취록에는 욕설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호칭이며 형용사, 부사 등 욕설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긴 금품을 뜯고 상대를 괴롭히는데 점잖은 말로 통하기야 하겠나마는.

포항 어느 중학교에서는 학생이 훈계하는 교사를 교무실에까지 따라와서 “야, 이 XXX아, 네가 선생이면 다냐” 했다는 거다. 물론 선생이라고 다는 아니다. 그러나 선생에게 욕을, 그것도 교무실까지 따라와서 다른 교사들이 보는 데서 욕을 했다고 한다. 교사에게 그런 욕을 해대는 학생이 자기보다 약한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마땅한 응징 수단이 없어 교사가 오히려 학생을 피해 다른 학교로 달아나고 싶다는 경찰 조사다.

그래서 말인데, 학교 폭력은 우리 사회의 언어를 순화하는 데서부터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듣기 좋은 말,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어생활을 통해 폭력을 줄여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비록 19금이라 하더라도 욕설로 점철된 영화를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욕설과 폭력이 일상화돼 있다는 증거일수도 있다. 나꼼수 방송에 박수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을 청소년 유해물질로 규정하자 만화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폭력을 미화하거나 범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며 항의했다. 그렇게 치면 웹툰 뿐 아니라 영화나 나꼼수 까지도 모두 폭력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학교 폭력의 원인을 “진짜 유해한 것은 한국 사회 그 자체”라고 한 어느 정당의 논평은 적확하다. 폭력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라는 것이다. 쓰리쿠션으로 따지고 보면 욕이 친숙한 사회는 더욱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책임은 역시 학교 교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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