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조손가정 중학생 7개월간 폭력 시달려 학교 도움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보복폭력 할아버지 “돕는 사람 없는 세상 원망스러워”
안동시 북후면 소재지에서도 10여km 꼬불꼬불 산길과 가파른 재를 넘어 있는 두메산골 신전리. 대도시나 있을 법한 학교폭력은 시골마을서 힘겹게 살아가는 조손가정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주말인 지난 25일 해질 무렵 이 마을 산자락에 위치한 농가에서 만난 임모(80)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최근까지 수개월 동안 손자 용훈(15·가명)이가 다니던 학교의 선배나 동급생들로부터 집단으로 폭행당한 기막힌 사실을 근래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관청에서 매월 조손가정에게 지급하는 최소한의 생계급여도, 주거급여마저도 이들에게 빼앗기자 손자가 겪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도 막막하다.
할아버지는 11년 전 이런저런 연유로 손자가 4살때부터 함께 지냈다. 겨우 콩밭 두 마지기 농사와 기초노령연금 몇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형편. 빼앗긴 그 돈은 이들에겐 생명줄과 같았다.
“돈을 구해 오지 못하면 수시로 불러내 마구 때렸어요. 가슴이나 배를 맞았을 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그 순간만은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사이 1.5평도 채 안되는 방 모서리에서 웅크려 있던 용훈이가 그동안 겪었던 학교폭력의 실태를 조금씩 뱉어 냈다.
작년 7월 초여름, 훈이가 재 넘어 모 중학교 1학년에 다닐 무렵 선배나 동급생 등 여러 명에게 집단으로 맞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해 8월부터 최근까지 집단으로 맞았다. 폭력에 가담한 학생들은 어떤 때는 3명이 되기도 했고 5명, 6명으로 점점 불어나기도 했다.
특히, 절도 등 비행을 저질러 보호관찰 중인 퇴학생도 가담했다. 훈이가 제일 무서워 하는 그 퇴학생이 같은 학교에 복학한다는 소문을 듣고부터 벌써 두렵기만 하다.
한 달에 한 번 맞는 것은 운이 좋은 달이라고 했다. 어떤 달에는 교내 화장실에서도, 어떤 때에는 인근 공사장으로 끌려가 얼굴, 가슴 등 가릴 것 없이 죽도록 맞았다고 했다.
결국 견디질 못한 훈이는 학교에 도움도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들에게 징계도 없이 훈계 정도로 그쳤다.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더욱 가혹해진 그들의 보복 폭력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돈이었다. 그동안 훈이가 조금씩 빼앗긴 푼돈은 급기야 수백만 원으로 요구 액수가 눈덩이만큼 불어났다. 이들은 훈이 명의로 생계급여나 주거급여가 매월 지급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야금야금 털어갔다. 훈이의 통장에는 이들이 인근 은행에서 현금으로 수차례 챙겨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처음엔 폭력에 못이긴 훈이는 요구대로 현금 30만원을 찾아 이들 손에 쥐어줬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1주일 후에는 80만원을 추가로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훈이는 무서웠지만 거절해야만 했다. 남은 돈은 할아버지와 생계를 위한 유일한 돈이기 때문이다.
뜻대로 안 되자 이들은 자신들의 게임기를 망가트려 놨다는 누명을 씌워 또 훈이를 집단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몽둥이도 동원됐다. 돈이 나올 때까지 때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훈이는 결국 이들의 요구대로 돈을 찾아줬다고 했다.
“설날에도 주위 분들에게 받은 세뱃돈 조차 몽땅 뺏아 갔어요. 할아버지, 정말 미안해요. 그때 맞아 죽더라도 통장의 돈 만큼은 뺏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말을 끝으로 훈이는 할아버지 무릎에 엎드린 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안동/권광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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