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화가 청마 이경문 화백(62·사진)의 그림이다.
40여년 가깝게 풍속화를 그리고 있는 이 화백의 그림은 김홍도, 신윤복 같은 조선왕조 최고의 도화사 화원들이 백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해학 넘치게 그려낸 저 풍속화와는 다르다. 서민들의 역동적인 정서가 화면에 사실대로 맛깔나게 그려졌던 조선시대 풍속화와는 다르게 비구상법으로 그려낸다. 가깝게는 신윤복이 화려한 자태 속에 숨겨진 여인의 정념과 회한을 담아낸 조선 초상화 최대의 명작 `미인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천한 신분의 기녀들을 화폭의 주인공으로 불러낸 것을 이 화백은 우리의 옷을 입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 여인들을 조심스럽게 가공해 담아냈다.
그리움을 한가득 머금은 듯 애잔한 눈빛에 조심스럽게 옷고름을 쥔 가냘픈 손의 조선시대 풍속화의 주인공들이었다면 이 화백의 그림엔 과일 바구니를 인 여인, 사내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 관악기를 연주하는 여인들장면을 담은 그림들은 자유분방한 풍류적 세태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마치 조선시대 회화가 도달했던 탐미주의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화선지 한 장 펼치고 한 촉의 난초 한 뿌리를 그린다는 시적 감성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화백은 1970년대 중반부터 이같은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청초 이석우 화백과의 사부 관계를 맺게 되면서부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당시 회화적인 의식으로는 아니었지만 평소 생활의 형태와 심성적 측면에서 풍속에 대한 사유와 심미적 시작을 간직해 오면서 남다른 고집을 보여왔다. 35년이란 긴 세월동안 그의 풍속화에 대한 여정은 저같은 출발에서 작가 자신이 심성적 표현에 의해 요구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자연히 그의 화면에는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묘사는 재현이라기 보다는 많은 대상의 형용 물체들을 제거해 버린 채 가장 근본적인 형상들만을 해부해 가고 있다.
오는 18일까지 경주서라벌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그의 작품전에는 `2011 사실과 구상의 만남`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그만의 독특한 화법이 서려있는 인물화와 풍속도 등 50여점이 선보인다.
출품작들은 여느 한국화와 같이 화선지에 채색한 채색화 이지만 서양화와 같은 독특한 마티에르를 만날 수 있다. 채색 하기에 앞서 화선지를 손으로 구겨 오브제의 느낌을 나게 하는 방법은 그의 독특한 기법이다. 과일 바구니와 여인, 장바구니를 인 여인들의 장면을 담은 그림들은 명료하면서도 섬세한 필치가 특징이다.
목단, 연꽃, 백두산 호랑이 등을 담은 8곡 병풍들도 한껏 무르익은 풍속화가의 예술성을 만나볼 수 있다.
문의 010-3113-5333.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