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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울트라 마라톤(1)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27 23:01 게재일 2011-05-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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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포항장성요양병원장

지난밤에는 오늘 있을 경기 관계로 흥분한 때문인지,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제주도 일주 200km 울트라 마라톤(이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고 제주 공항에 내리는 순간 천둥 벼락을 치는 날씨여서, 다음날 경기가 무사히 치러질지에 대해 걱정을 했으나, 오늘은 경기하기에 상쾌한 날씨다.

음식은 보통 시합 2~3시간 전에 먹으므로 새벽 3시에 일어나 음식을 간단히 먹고,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대소변을 보았다. 5시에 출발선에 서서, 앞으로 달릴 500리 길을 상상해 본다. 과연 이 두 다리로 그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10km쯤 달려갔을 때, 나는 1위로 달리고 있었다. 진행요원이 나에게 “나이도 드셨는데 무리하면서 달리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3위로 달려갔다. 산방사굴이 있는 70km까지는 달리기에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고되다.

100km지점인 서귀포에 오후 2시에 도착하여 약 한 시간동안 점심을 사 먹으면서, 밤새도록 달릴 준비를 했다. 배낭 속에 광부들의 해드렌턴과 땀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감아 둔 돈, 다칠 때를 위해 준비한 지팡이와 약품, 종이와 볼펜, 추울 때 낄 장갑과 토시, 긴 상하의 한 벌을 배낭에 넣어서 메고, 또다시 남은 100km를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마치 고행자가 자기 수련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처럼. 간혹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길에서는, 정신이 압도되고 질려서, 매우 지루하게 느꼈다.

밤 9시께에 한 식당을 찾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추운 야간에 달릴 준비를 했다. 변소에 가서보니 항문이 밖으로 밀려 나 있다. 손으로 밀어 넣어도 효과가 없다. 그냥 달릴 수밖에….

야간이어서 옷에 형광을 붙이고, 헤드랜턴을 켜고, 고구마 장갑을 끼고, 사막을 걸어가는 나그네 같은 심정으로 끝이 없어 보이는 어둠을 헤쳐 간다. 쌍갈래 길에는 땅에 화살표가 그려져서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준다. 동네의 개들은 낯선 사람이 뛰고 있으니까, 모두가 합창으로 짖어댄다. 파도소리가 철썩이는 것도 몇 시간이나 들으니 이제는 시끄럽고 귀찮아 진다. 잠시 뛰지 않고, 걸으니 땀으로 젖은 옷이 섬뜩하게 차갑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뛸 수밖에 없다. 밤새도록 고독하게, 절절한 피로 속에서 섬뜩함을 느끼는 이 운동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밤새도록 달려야 하는 이 경기에 출전하려고, 어떤 때는 새벽 3시께에, 때로는 밤 1시께에도 연습을 했다. 연습 때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개들의 공격을 받는 것이었다.

만일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이 밤에!, 저 사람 돌았나!` 하거나, 또는 동네 개들이 덤빌 때의 난처함에 항상 신경이 쓰였다. 이 시간에는 도사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과 같았다. 밤 11시45분께에 성산 일출봉 입구에 도달했다. 3/4거리를 달려 왔다. 준비된 간단한 음식을 먹은 후에 또다시 어둠 속을 거의 헤매듯이, 흐느적거리면서 달려 나간다. 고요가 귀를 시끄럽게 한다. 이런 고요는 무섭다. 어쩌면 신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적막하다. 고독하다. 이것은 조용한 고독이 아니라 펄펄 뛰는 가슴과 땀을 철철 흘리는 고독이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면서 걷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제는 마구 퍼부어 지는 졸음을 이겨야 한다. 사부작사부작 달린다. 비틀거린다. 170km지점에서는 팔, 다리, 허리, 특히 발목이 많이 아프다. 3명이 나를 지나갔으니 나는 지금 6위를 하는가 보다. 머리가 핑핑 돈다. 새벽 5시경에 길옆에 서 있는 차량을 이용하여 잠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고단하고 피로했으나 약 15분 쯤 자고는 깨어 일어났다. 졸음이 퍼붓는데도 완주라는 사명감이 잠을 밀어내었는가 보다. 3명을 재치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해가 다시 뜨고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한다. 발목이 많이 아프다. 목적지를 3km남겨두고 한 사람이 내 앞으로 달려 나간다. 나는 지금 4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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