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이후 정국이 당초 우려했던 방향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이 노 전 대통령의 유지와 국민적 추모 열기에 반영된 화해와 통합에 대한 염원을 외면한 채 ‘사후(死後) 정국’ 주도권 확보에 몰입하는 듯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6월을 시작하는 첫날부터 임시국회를 여는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법무장관·검찰총장 파면, 국회 국정조사, ‘천신일 특검’ 등을 요구하며 임시국회 일정과 연계할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6월 정국의 초입에서 여야를 관통하는 화두는‘책임론’으로 요약된다. 한나라당에서는 당 쇄신특위를 중심으로 지도부 사퇴와 조기전대를 통한 국면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당이 먼저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부와 청와대의 쇄신을 추동해보자는 주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요구하며 ‘여권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2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처럼 일이 커질 수 있으니 실기하지 말고 적절한 조처를 부탁한다”며 대통령의 조속한 사과를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여야의 모습은 4·29 재보선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표출된 민심의 소재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내 탓’ 이든 ‘네 탓’이든 뭔가 당리당략적인 속내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확대 재생산하고 이로 인해 남남갈등이 조장되는 것은 적전분열이자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여야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엄중히 직시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대화와 협상에 임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