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달성군 출신의 산재의료원 구본건 감사는 어린 시절에 홀로 된 어머니 병수발, 고학, 살기 위해 해야 했던 험한 일들을 모두 하면서도 외식사업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는 청년운동에도 앞장서 JC북대구 회장과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중앙회장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 경선 때는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지지조직인 ‘희망세상21’산악회 부회장으로서 실무책임을 맡았다. 대선 본선 때는 유세지원단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아 일했다. 최근 산재의료원 감사로 취임해 ‘나부터 운동’을 제안하는 등 활발히 뛰고 있는 구본건 감사의 어린 시절 얘기와 성공스토리, 근황 등을 들어봤다.
-어린 시절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나마 모친이 편찮아서 병수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 5년이나 이어져 고생이 적지 않았죠. 민간요법에서 병에 좋다고 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챙겼습니다. 모친은 당뇨와 와사증 등을 같이 앓았는 데, 와사증에 좋다고 해 할미꽃 뿌리를 달여 드리거나 당뇨에 구더기가 좋다고 해 구더기를 볶아 갈아서 먹게 한 적도 있습니다. 결국 22세 때 모친이 돌아가시고, 고아 아닌 고아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었으면 사회에서 자리 잡기 어려웠을 텐데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는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내게 유형의 재산은 없는 만큼 무형의 재산을 축적하자. 사람을 많이 알고, 많이 사귀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성실해야 주위에서 찾아주고, 반길 것이라고 생각해 항상 성실·정직·바른 몸가짐을 갖고 생활했죠. 그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사업적으로 외식사업 분야에서 유명인사로 알려져 있는 데, 어떻게 된 겁니까.
▲처음 외식사업 분야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지난 1981년 당시 29세의 나이로 대구시 중구에 있는 한일회관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에 전무로 발탁되면서 부터였죠. 당시 한일회관은 양식 레스토랑과 샤브샤브를 주종으로 하는 식당으로, 6개월째 적자를 보면서 폐업위기를 맞아 제가 전무로 스카우트된 겁니다.
저는 현장을 둘러보고 위치가 상주인구나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고,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고정고객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해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멤버쉽(회원제)’제도를 운영할 결심을 했습니다. 디자인과 문안, 회원대상자 리스트 발췌, 우편발송 등을 도맡아 진행했죠. 처음 1천명에게 회원 가입안내문을 보냈는 데, 250명에게서 신청서가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었죠. 당시 사회분위기상 ‘VIP 카드’를 발급해 하이클래스를 대상으로 영업을 한 것이 주효한 겁니다. 몇 달 되지 않아 매출액이 이전의 5배로 급신장했습니다. 언론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켜 인터뷰 요청이 잇따랐고, 여러 호텔 사장들이 찾아와 직원들에게 비결을 강의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가 됐죠.
(실제로 구 감사는 이외에도 복전(Lucky Money:건강과 행운을 비는 돈), 계절별 음식이나 절기별 음식 개발 등 갖가지 아이디어들을 통해 식당의 매출향상을 꾀했고, 이런 것들이 대부분 들어맞으면서 외식사업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국내 최초로 국산 외식 프렌차이즈 브랜드도 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뷔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것을 보고, 저는 새로운 외식사업 형태로 진출하기 위해 남구 대명동 앞산 밑에 국산 외식 프랜차이즈로서는 최초인 마이하우스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설립 17년째인 마이하우스는 지금도 죽 뷔페와 깔끔한 가족 레스토랑으로 명성을 날리며 성업 중입니다. 외식사업은 100명이 시작하면 5년 뒤 그 식당이 살아남을 확률은 5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은 성실과 근면이 뒷받침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 운동에 많은 애착을 갖고, 활동도 많이 했다고 들었는 데, 어떤 활동들입니까.
▲JC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많이 눈을 뜨게 됐습니다. 사람도 많이 알게 됐죠. 지난 1989년 북대구 JC회장에 당선됐을 때입니다. 치열한 선거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대방 진영의 사람들을 모두 임원직에 영입해 클럽 운영에 협조를 구하고, 매달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목적의식과 동료의식을 심어주고, 모임의 공은 모두 담당 부회장들에게 돌렸습니다. 그 결과 374개 로컬 JC가운데 최우수 회장으로 뽑혀 상을 받게 됐습니다. 그 상을 받았던 것이 사회생활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청 중앙회장도 지냈다는 데, 어떤 경위입니까.
▲1996년도 한청 조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시 강삼재 사무총장의 추천으로 한청 중앙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이 때 강원도, 제주도 등지를 뛰어다니며 조직이 와해된 것을 복원했고, 더 나아가 미주지부를 결성하는 등 한청 조직복원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여러 번 국회의원 공천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요.
▲앞서 말한 한청 조직 복원을 이뤄낸 공로로 신한국당 전국구 예비후보까지 받았고, 15대 총선에서는 경북도당 대변인을 맡아 12명의 대변인단을 이끌면서 대구·경북지역에서 최고 득표율을 올리는 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의 공식 학력이 중졸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들이 많았고, 결국 상위 순번에서 밀려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6대 때는 주위의 권유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국민대 현승일 총장이 공천을 받았고, 17대 총선 때도 역시 대구 중·남구에 공천신청을 했으나, 역시 낙하산 공천으로 MBC 계열사 사장 출신인 곽성문 전 의원에게 밀렸습니다. 지난해 18대 총선에서도 배영식 현 의원에게 밀린 셈이죠.
-최근 산재의료원 감사로 취임했는 데, 산재의료원을 소개해 주시죠.
▲지난 1936년 설립된 삼척병원을 효시로 한국의 대표적인 산재보험 전문병원입니다. 장성병원, 중앙병원, 동해병원 등을 설치해 현재 전국 9개 병원과 재활공학연구소, 직업성 폐질환연구소 등 2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오는 2012년 대구 경북지역 산재환자들을 위한 250병상 규모의 대구재활전문산재병원 개원을 목표로 대구시 북구 학정동에 올 하반기에 착공할 예정입니다.
-감사로 취임하자 마자 산재의료원에서 ‘나부터 운동’을 제안해 뛰고 있는 데, 무슨 운동입니까.
▲나부터 운동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나부터 하자는 운동입니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실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해서 이뤄지지 않으며, 나부터 인사를, 나부터 친절을, 나부터 겸손을, 나부터 전기절약을, 나부터 봉사를 하자는 등입니다. 지난 달 7일 산재의료원에서 나부터 운동 선포식을 갖고, 각 산하병원별로도 나부터 운동 선언문과 실천지침, 차량용 스티커 부착을 하고, 이 운동을 홍보할 수 있는 내용의 책자를 배포해 운동확산을 꾀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꿈은 이제 접었습니까.
▲독수리는 (먹이를 챌 때 이외에는) 발톱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구본건 산재의료원 감사는
달성군 하빈면 묘동이 고향인 산재의료원 구본건 감사는 조선조 사육신의 하나인 박팽년의 21대 외손으로 태어났다.
남산초등학교와 청구중학교를 나왔으나, 가정형편상 고교는 진학도 못했고 검정고시를 했다. 대학은 40대 후반에 큰 아들과 함께 계명대에서 학사학위를, 서울 경기대 관광학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젊은 시절부터 청년운동에 힘써 JC북대구 회장, 한국청년지도자 연합회 중앙회장, 대구시 관광협회 부회장, 한국자유총연맹 대구 남구지부 지부장을 역임했고, 한국음식업 중앙회와 한국 외식경영학회 감사도 지냈으며, 현재는 산재의료원 감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