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저기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내 숨에 끝날까지 사슬 끌려도
노을 만 평 사다가
친구들과 옛 애인 창가에 놀러가고 싶네
-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2004)
신용목의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를 여러 번 읽었다. 젊은 시인 신용목이 말하는 저 ‘노을 만 평’은 그 값이 얼마일까? 그가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사두고 싶다”는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노을 만 평”의 값은 얼마나 될까? 단순한 산술적인 가격으로는 계산이 안 될 것이다. 시인이 서정의 물살을 펼쳐 만든 마음의 공간이니 현실의 돈으로는 살 수가 없을 터. 시인은 그 ‘노을 만 평’에 어울리는 “철새/한 무리 사둔 친구”와 “갈대밭/한 뙈기 사둔 친구”를 부르려 한다. 그리하여 “친구들과 옛 애인 창가에 놀러가고 싶네”라고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과 허공 가득 나는 철새가 있는 노을 만 평을 옛 애인의 창가로 가져다 놓으면 그 애인 창을 넘어오지 않겠나. 나도 시인의 친구로 그 노을 만 평에 기꺼이 들어서고 싶네. 그 풍광에 잘 어울리는 멋진 소리를 내는 피리 하나 사 들고서. 아니면 개밥바라기별 하나 사서 호주머니에 넣고 갈까? 번잡한 세상 일 잠시 잊고 이런 지독한 낭만적인 노래나 부르며 한철을 보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