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俗談)은 글자 그대로 속된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민중의 말이다. 속담은 유명한 사람들의 명언이나 격언과는 다르다. 그러나 거기에는 민중의 지혜, 길거리의 철학이 담겨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엉뚱한 곳에 가서 화풀이를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관가에 가서 곤장 맞고 집에 와서 제 계집 친다’라는 것도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의 뜻을 넓게 해석하면 자신의 감정을 그 감정을 일으킨 대상이 아닌 엉뚱한 곳에 옮긴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 실생활에도 많다.
밖에서 일어난 일로 화가 났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집에 와서 만만한 자기 아내에게 화를 낸다든지 때린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또 직장상사가 사장에게 꾸중을 들으면 그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부하에게 화를 내는 경우 등이 있다.
극단적인 예를 상상해보자. 첫 사랑 영자씨에게 실연을 당했던 사람이 나중에 동명이인의 영자씨를 만나 결혼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꼭 이름뿐만 아니라 첫사랑의 감정이 옮겨져 다음번의 애인을 택하는데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많다.
이 역시 좋은 의미에서 ‘한강에 눈 흘긴’ 것으로 볼 수 있고, 못 이룬 첫사랑을 동명이인을 통해 이룬다는 보상심리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두 번째 영자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놓고는, 사랑의 감정이 싹튼 후에 차버리는 것은 하지 마시라. 혹시 ‘이번에는 내가 영자를 차버렸다’는 일시적 자기만족은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평생 동안 자책감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건 ‘한강에 눈 흘기는’ 사례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경우로 기록될 수도 있다.
하여튼 첫사랑과 이름이 같은 아내를 얻으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직도 옛사랑, 첫사랑을 못 잊어 “영자야.” 하며 잠꼬대를 해도 들킬 염려가 없다. 아내는 오히려 남편이 잠꼬대에서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니 사랑을 확신하게 된다.
낮에 실수로 옛사랑 이름을 불러도 괜찮다. 가끔은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나와는 결코 무관한 일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속담은, 한마디로 감정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어떤 대상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 감정을 주어도 덜 위험한 대상에게 옮기는 심리적 과정이다. 이렇게 감정을 옮기는 심리과정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전치( displacement : 바꾸어 놓기, 이동)라고 한다.
전치를 설명하기 위해 지그문트 프로이드(1986-1939)의 유명한 사례 중에 ‘어린 한스(LIttle Hans)’의 사례를 소개해본다. 프로이드는 아시다시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사 중의 한 분이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정신분석(psychoanalysis) 이라는 용어도 1896년에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프로이드가 말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말에 대해 공포증을 가진 어린 ‘한스’라는 아이를 정신분석치료를 하다가 왜 말을 무서워하는지 원인을 알아내게 되었다.
‘한스’라는 아이가 말을 무서워하는 것은 원래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무의식적 공포의 감정이 아버지보다는 덜 위협적인 말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치 현상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