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전날 긴 장대 끝에 곡식 이삭 매달아
볏가릿대는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낟가릿대, 노적가릿대, 유지방이, 햇대 등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다. 정월 대보름 전날 시골농가에서 긴 장대 끝에 곡식의 이삭을 달아 처마 앞에 세워 두는데, 이는 그 해의 오곡이 풍성하여 노적이 마치 볏가릿대와 같은 높이 쌓이라는 의미이다.
포항에서 볏가릿대 풍습이 전해 오는 곳은 포항시 죽장면 상옥2리다. 이 마을에서는 흔히 ‘뺏가릿대’ 또는 ‘뺏가리장대’라고 부른다. 정월 14일에 세우고, 2월 영등날에 눕히는데, 명칭으로 보면 풍년 기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나, 재액(災厄)의 의미가 별나게 강조되어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다른 지방의 볏가릿대와는 달리 독조(毒鳥)인 짐새를 막기 위한 주술적 기능을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마을 노인들에 의하면, 살무사 천 년에 양두새(兩頭蛇) 되고, 양두새 천 년에 짐새가 되는데, 짐새는 온 몸에 독을 품고 있어 사람이 날아가는 이 새의 그늘만 쏘여도 즉사하고, 그늘을 쐰 음식을 먹어도 즉사한다고 한다. 사람이 원인 모르게 급사하는 것은 이 새의 그늘을 맞았기 때문이며, 잔치 때 차양(遮陽)을 치는 이유는 짐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짐새는 2월에 날아다니는데, 불빛과 오색을 싫어하므로 이 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매년 정월 14일에 초롱과 오색 천으로 장식한 장대를 마당에 세웠다 한다. 이는 짐새라는 상상의 독조(毒鳥)를 막기 위한 주술적 장치로서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볏가릿대 세우기
그러나 짐새는 중국에서 짐조란 이름으로 실재하는 새다. 중국 남방 광둥(廣東)에 사는 독이 있는 새로 몸의 길이는 21~25cm이며, 몸은 붉은 빛을 띤 흑색, 부리는 검붉은색, 눈은 검은색이다. 뱀을 잡아먹는데 온 몸에 독기가 있어 배설물이나 깃이 잠긴 음식물을 먹으면 즉사한다고 한다. 중국의 기서(奇書)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여궤산, 금고산(琴鼓山), 옥산(玉山)에 짐새가 많다고 했고, “짐의 크기는 독수리 정도이며, 자록색의 날개를 가졌고, 목이 길며 부리가 붉다. 살무사의 머리를 먹는다.”고 했다.
세우기를 마친 볏가릿대 모습
강한 독성 때문에 중국에서는 사람을 독살할 때 이 새의 독성을 이용한 적이 더러 있는데, 한나라 2대 황제인 혜제(惠帝) 원년(B.C 194)에 여태후(呂太后)가 고조(高祖)의 후궁이었던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독살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죽고 나이 어린 혜제(惠帝)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황태후인 여후가 실권을 잡게 되었는데, 여후는 고조가 살아 있을 때 총애를 받았던 후궁 척부인과 그의 아들 여의를 미워하여 두 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 때 여의에게는 짐주, 짐새라는 독조의 깃과 털로 빚은 술를 권하여 마시게 했다고 ‘사기(史記)’에 전한다.
중국에서 실재(實在)하는 새가 우리나라 민속에서 상상의 새로 인식되고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주술이 행해지게 된 것은, 중국에서 유래한 짐새 피해 예방 풍속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한반도에 없는 짐새가 크게 과장되어 상상의 새로 인식되면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상옥리를 비롯한 죽장면 일대에서 볏가릿대를 세우는 집이 많았는데, 산업화시대에 들어 한 동안 끊겼다가 1990년대 들어와서는 마을 회관 앞마당에 공동으로 세우고 있다.
볏가릿대 세우기에 필요한 재료는 장대(주로 낙엽송), 벌림줄(새끼줄), 청솔가지, 어사화(御史花), 가리새, 유지뱅이, 수술, 오색 천, 전구 등인데, 대보름 하루 전인 정월 14일에 동민들이 모여서 장대로 쓸 나무를 베어와 다듬고, 유지뱅이, 어사화 등 각 부분품들을 따로 만들어 장대에 단다. 전구를 매달고, 전깃줄까지 이으면 볏가릿대가 완성된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데는 장정 10명 정도가 필요하다. 2~3명이 장대 아랫부분을 붙잡고 세울 정확한 위치를 잡으면 사방에서 각각 1~2명이 벌림줄을 잡아당기면서 세운다. 집집마다 세우던 시절에도 볏가릿대는 무거워 혼자서 세울 수 없기 때문에 마을 청년들이 집집이 돌면서 세웠다. 다 세우고 나면 전등에 연결된 전기 코드를 전원에 꽂아 불을 켠다. 이어 장대 앞에 상을 차리고 제수를 진설한 후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이어서 지신밟기를 한다.
정월 14일에 세운 볏가릿대는 약 보름간 세운 후 음력 2월 3~5일에 눕힌다. 눕힐 때도 마을 청년들이 힘을 모아 눕히며, 눕힌 후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한 바탕 놀이판을 벌인다.
이처럼 상옥 마을의 볏가릿대는 풍년 기원의 의미 외에 재액의 의미가 강하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신앙 대상물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세운 다음, 여기에 제사를 지내고 지신밟기까지 하는 것은 상옥 마을의 볏가릿대가 마을 공동체 신앙의 신앙 대상물로 기능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볏가릿대 세우는 풍속이 포항에서도 유독 상옥리에만 전승되는 이유는 이 곳이 사방 험준한 산(해발 600~800m)으로 둘러싸여 있고, 교통이 불편한 산간오지라서 오랫동안 외부 문명의 간섭을 적게 받은 탓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