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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득 찬 만추의 용계정 눈 가는 곳 마다 절경에 탄성이…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11-14 19:39 게재일 2023-11-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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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된 은행나무 노란빛 마을 물들여 <br/>병풍같은 용계천 주변 석벽·솔숲도 수려
용계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솔숲.
가을이 온 세상에 가득 찬다는 만추이다. 포항시 기계면에서 기북면으로 차가 들어서자 너른 들판과 그 배경인 파란 하늘이 더 넓게 펼쳐졌다. 함께 간 일행이 화면에 보호필름을 벗겨낸 듯 환해졌다며 눈이 시원하다고 했다. 노란빛은 더 샛노랗게 하늘은 더 맑게 보였다. 덕동마을까지 가는 길은 사과 따는 향기와 들깨 떠는 냄새로 가슴 속까지 풍성해졌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니 당도했음을 알리는 도하송(到下松)이 반긴다.


솔숲과 활엽수가 가득한 마을 입구의 청소년수련관은 폐교(덕동초교)를 활용한 공간이다. 교적비에 1961년 개교 후 1천394명의 졸업생을 내고 1992년에 폐교되었다고 씌어 있다. 30년 동안 마을 어린이들을 키워 번듯한 어른으로 사회에 내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줄자 타 지역 아이들까지 받아들이는 수련관으로 변했다.


덕동민속전시관 앞에 차를 세웠다. 곧바로 덕동마을의 상징인 용계정(龍溪亭)으로 내려가니 정자방에서 마을 어른들이 둘러앉았다. 가끔 용계정으로 나들이를 오면 잠겨서 마루에 오르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열려있어서 댓돌 아래 어르신들 신발 옆에 구두를 벗고 정자에 올랐다. 댓돌이 사람들의 온기 때문인지 반들반들하다. 쌀쌀한 날씨에도 방안에서 두런두런 따뜻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자 마루 기둥에서 내다보자 계곡 건너편 암반에 연어대(鳶漁臺)란 글씨가 선명하다. 골짜기를 따라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아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눈 돌릴 때마다 보이는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소리에 방문이 열리며 어르신 한 분이 구경하러 왔냐고 물으셨다. 늘 닫혀있어 섭섭했는데 오늘은 문이 열려있어서 반가운 마음이라고 하자 잘 보고 가라며 방문을 닫으셨다.


이 건물은 조선 명종 원년(1546)에 건립하였고 숙종 12년(1686)에 증축하였다. 정조 이후에는 세덕사(世德祠)의 부속건물인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 때에 용계정을 세덕사지와 분리하기 위해 밤새도록 담을 쌓아 세덕사만 철폐되고 용계정은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건물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목조기와집이다. 부연의 처리와 난간 천장마루의 기법이 훌륭하다. 건물 뒤편은 후원으로 연결되는데 수백 년 전에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우뚝 섰다. 갈바람에 떨어진 노란 잎이 동네를 모두 노랗게 물들이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향나무, 백일홍 등이 용계정을 둘러싸고 계절마다 붉게 푸르게 빛난다. 1989년 5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용계천이 흐르는 정자 주변은 푸른 이끼와 석벽이 병풍 같고, 솔숲이 수려하다. 소나무에 이름표가 희미하다. 이곳의 솔숲은 2003년 마을 숲 복원 대상지였으며, 마을 숲은 입구의 송계숲, 용계정 위쪽의 섬솔(도송)밭과 용계천 석벽 너머의 정계숲을 포함한다. 연못은 마을에서 나온 물을 정화해서 내보낸다. 학교의 운동장으로도 20년간 사용되다 다시 연못의 역할을 하는 중이다.


마을은 여강이씨 집성촌인데, 사의당(四宜堂) 이강 선생이 안강의 양동마을에서 거처를 옮겨 왔다. 입향조 사의당의 호가 용계정 전에 씌었음을 알 수 있다. 민속전시관에 130년간 보관되었다는 마을 방명록인 첨배록(瞻拜錄)과 함께 나온 옥수숫대로 만든 효자손은 옛사람의 체취로 뭉클하다. 내용인즉 ‘아침에 다녀간다. 말 한 필과 노비 몇몇이 함께 다녀 간다’ 등 단순하지만 일상의 삶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기록이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항아리 채독도 특이한 물건이다. 그 외에도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 가득하니 마을의 고택과 함께 찬찬히 둘러봐도 좋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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