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영 산림청 구미국유림관리소장
백당나무는 태백산 일원 및 전국 산야의 산록부나 산골짜기의 습한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낙엽관목이다.
높이는 약 5m 정도 자라는데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조경수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꽃은 유성화와 무성화가 함께 피고 마치 접시를 올려놓은 것처럼 보여 북한지역에서는 접시꽃 나무라 부른다.
봄에 피운 꽃들은 대부분 저버리고 여름에 피우는 꽃은 개화하지 않은 5∼6월에 핌으로써 꿀을 먹는 곤충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열매는 9월에 붉게 익고 겨울까지 달려 있다.
백당나무에서 꽃잎이 크고 아름다운 무성화만 피게 만들어진 품종이 불두화다. 불두화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나무이어서 사찰이나 불교를 신봉하는 가정집의 화단에서 주로 자란다.
꽃이 필 때에는 연녹색을 띠었다가 완전히 피었을 때는 솜처럼 새하얀 빛깔로 변하고 꽃이 질 무렵이면 다시 연보라색으로 바뀌는데 탐스럽게 달린 꽃 모양이 마치 불상의 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나무가 부처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이름으로 사찰에 심어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 두 가지의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그 하나는 생명을 이어받아 태어난 자기 자신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켜나가는 일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자신과 꼭 닮은 생명체를 보다 많이 번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식물의 꽃은 번식기능을 수행해주는 중요한 생식기관이다. 종자로 번식하는 식물은 두 개의 성을 갖고 자연이나 곤충 등의 힘을 빌려 수정을 한 후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바람에 의해 수분이 되는 참나무류, 자작나무, 오리나무와 같은 나무의 꽃들은 가볍고 쉽게 퍼지는 꽃가루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정교한 암술머리를 가진다.
또한 곤충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하여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를 내뿜고 꿀을 만들어 주는 등 곤충을 불러들이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처럼 땅속에 뿌리를 뻗고 살아가는 식물은 스스로 짝을 찾아 나설 수 없으므로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 여건에 적합한 형태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며 자기 종의 번식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불두화의 꽃에는 수술과 암술이 없고 오직 꽃잎만이 있어 향기가 나지 않고 꿀샘도 없다. 따라서 벌과 나비는 아예 찾아들지 않는다. 매년 이맘때쯤엔 새하얀 꽃을 아름답게 피우지만 암수가 없는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봄날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향기로 곤충을 유혹하여 종족을 번식시키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면 수행을 하는 수도승들의 마음도 자칫 흩트려질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와 속박을 벗어나 성불하고자 하는 이들이 불두화를 좋아하고 가꾸려 했던 것이다.
불두화는 자신의 힘으로는 종족을 번식시킬 수 없는 나무이지만 불교와 인연을 맺어 사람들에 의해 꺾꽂이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선조는 자연을 아끼고 잘 활용하면서 살아왔다.
숲이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숲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더욱 어렵게 살고 있는 주변의 나무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언제라도 두 팔을 벌려 따뜻이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모두가 가져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