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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홍예석은 원래 있었다"... 성낙주 씨, 1910년 무렵 사진 공개

황태진 기자
등록일 2006-01-05 17:47 게재일 200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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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홍예석(虹霓石. 무지갯돌)이 1913년 일제의 보수공사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일제가 고의로 만든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석굴암을 연구해온 성낙주(52) 서울 중계중 국어교사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로 1913년 제1차 보수공사 이전에 촬영됐음이 분명한 석굴암 사진을 공개했다.



석굴암 본존불이 안치된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측에는 팔각 기둥이 각각 설치돼 있고, 이 두 기둥은 홍예석이라는 아치형 돌로 연결돼 있다.



이 홍예석에 대해 지금까지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원래 석굴암에는 없었으나 일제가 마구잡이로 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억지로 만들어 넣은 것이니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아왔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어떤 학자는 심지어 "1913년 일제가 보수할 때 본존불 시야를 가리려는 악의에서 이런 짓을 했으며, 그럼에도 1960년대에 우리 손으로 보수를 할 때도 바로 잡지 않고 그대로 두어 오늘에 이르렀다"고까지 했다.



성 교사가 법보신문 1월4일자를 통해 공개한 이 사진(가로 8.4 x 12.5㎝)은 초기에 촬영된 석굴암 사진 중 거의 유일하게 갓을 쓰고 도포를 쓴 조선인 남자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으며, 나아가 무엇보다 홍예석이 있었던 흔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특히 크다고 성 교사는 평가했다.



즉, 초기 석굴암 관련 사진 대부분이 본존불 모습을 전면에서 포착한 데 비해 성 교사가 최근 입수한 이 사진은 전실 남쪽 석축 바깥에서 카메라 앵글을 맞추어 촬영됐다.



따라서 이 사진에는 정면 기준 오른쪽 돌기둥 위에서 안으로 돌출한 부분인 이른바 '첨차석' 측면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마침 뚫린 지붕 구멍을 통해 햇볕이 스며드는 바람에 첨자석의 구조가 확연히 보이고 있다.



사진에 의하면 첨차석 단면은 양끝이 귀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는데 반해 중앙 부분은 홈이 나 있다.



성 교사는 이것이야말로 홍예석을 얹었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일제가 일본신사 입구를 지키는 도리의 누키를 모방해 없던 홍예석을 만들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실정이었다"면서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석굴암과 동시에 축조된 불국사의 연화교와 칠보교를 연결하는 무지개 다리를 볼 때도 홍예석이 없었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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