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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동부를 덮친 눈사태를 보면서

등록일 2016-01-26 02:01 게재일 2016-01-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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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

지난 주말에 미국 11개 주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뉴욕시는 역대 최고 하루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70㎝ 가까이 내린 눈으로 뉴욕의 존 F 케네디공항의 비행기의 이·착륙이 연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운행이 금지되고 기차 및 지하철의 운행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워싱턴 DC도 60㎝ 이상의 눈이 내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일부지역에서는 전기가 끊어졌다. 그리고 강풍과 폭설로 인해서 25일부터는 미국 연방 정부도 일시적으로 폐쇄된다고 한다.

보스턴도 예외는 아니어서 뉴스나 라디오를 통해서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걱정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너무 미끄러우면 어떻게 하나, 대중교통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다. 호들갑스러운 언론보도와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보스턴에서는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저녁 8시쯤 되었을 때 눈은 발이 파묻힐 정도로 내렸다. 필자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아서 버스가 끊어질까봐 평소보다 일찍 연구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온라인 뉴스에는 뉴욕과 워싱턴 DC가 눈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거리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보스턴의 경우에는 밤새 제설차가 거리의 눈을 치워서인지 도로 위에 눈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버스와 차량 운행도 원만했다. 더구나 일요일에는 보스턴이 맑게 개어 태양이 쨍하고 비췄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왠지 토요일에 눈이 온 덕분인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워싱턴 DC는 남쪽 지역이어서 겨울에 눈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제설차량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눈이 오면 도시가 거의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스턴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더구나 작년 2월에는 100년 만에 두 번째로 많이 내렸다고 할 정도로 내렸던 터라 제설차량이나 장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눈이 내리면 어떻게 치워야 할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학습이 돼 있다.

이렇게 대조적인 도시들의 모습을 보면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보스턴은 눈이 원래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에 시 정부에서 제설 장비나 차량을 마련하는데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매번 내리는 눈으로 인해서 생기는 교통 체증과 도시 기능 마비로 인해서 막대한 금전적인 손해를 입는 것보다는 눈을 효과적으로 치우는 데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남부 도시들의 경우, 어쩌다가 내리는 많은 양의 눈에 대비해서 굳이 제설 장비나 차량에 예산을 투자하는 것은 예산 낭비일 수 있다. 언론보도에서는 25일부터 연방정부를 일시적으로 폐쇄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외국인이 보기에 무척 큰 국가적 사태인 것처럼 보이는 이런 사태도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제설장비 구입에 돈 쓰는 것보다는 더 효율적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보스턴은 눈사태에 준비가 잘 되어있는 도시라고 칭찬하고 워싱턴은 준비가 안 된 도시라고 일방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없다. 각 도시가 상황과 조건에 맞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도 비슷한 태도와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준비된 정부나 정치인이라면 당장 여론의 관심을 끌고 불평의 거리가 되는 문제보다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언론이나 대중들의 입에서 `헬 조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시적인 불편함이나 불평, 혹은 악의적인 선동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나라를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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