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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 보고 이후락에 박정희 “집어치워” 재떨이 던져

임재현기자
등록일 2015-08-19 02:01 게재일 2015-08-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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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출신 이대환 작가 신간 `박정희와 박태준`서 비화 공개<Br>박 前대통령 서거전 마지막 방문 포항서 박태준과 통음<Br>김대중 납치 거론에 “태준이도 날 그런 사람으로 보나”
▲ 1970년 10월 포항제철의 항만시설을 시찰하는 보트 안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왼쪽부터)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박태준 사장의 모습.

“태준이마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서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포항제철을 방문해 회사의 영빈관인 백록대에서 당시 박태준 사장에게 되물은 말이다.

19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온 박 대통령이 포항에서 박 전 회장에게 당시 사건은 자신과 무관하며 책임자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비사가 단행본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화제의 책은 포항 출신의 이대환(57)작가가 지난 15일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을 부제로 발간한 `박정희와 박태준`.

이 책에는 박 대통령이 그해 2월1일 열린 `포철 4기(850만t 체제) 종합착공식`하루 전인 1월 31일 포항을 방문해 밤새 박 회장과 통음한 뒤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상경한 일화가 소개돼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작심하고 내려온 듯 고향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박 회장에게 말했다. 남구 효자동(현 지곡동) 포스코주택단지 숲속 한켠의 백록대 2층에 마련된 술자리에는 박 회장의 지시로 구해온 구미 선산 막걸리와 해물 안주들이 준비됐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1960년 부산의 군에서 근무하던 두 사람이 자주 술자리를 가진 이후 20여년 만에 마음을 터 놓은 자리여서 의미가 깊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은 평소 박 회장을 부르던 `임자`나 `자네`가 아닌 “태준이.”라고 오랜만에 불렀다. 이어진 대화에서 박 회장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언급했다.

“국내정치를 더 어렵게 만든 계기는 김대중 납치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리 정적이어도 그런 방식으로 다룬 것은.”이라고. 이때 말을 막은 박 대통령은 당시 이후락의 보고에서 사건을 처음 알게 됐으며 자신과 무관함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강하게 질책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후락이 다급하게 청와대에 들어와 당황해 하면서 보고해 알게 된 후 화가 치밀어 탁자 위에 있던 재떨이를 얼굴을 향해 집어 던지고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것. 이어 “김형욱이, 이후락이, 너무 오래 썼어”라는 독백과 함께.

이에 박 회장은 대통령에게 당시 사건이 회사에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며 화제를 돌렸다. 일본 정부가 항의와 보복의 차원에서 대한 경제협력의 전면 중단을 선언해 2기 건설을 위한 설비구매와 기술협력에도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즉시 간부들과 함께 서독으로 넘어가 철강설비업체들을 통해 설비 구매의 선을 다양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일본의 고자세를 낮추고 구매 단가와 조건도 포철의 구미에 맞게 완화시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 그는 1974년 포스코의 영빈관 영일대로 날아온 서독의 설비업체 중역들을 의식해 밤마다 방의 불을 환하게 켜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도 했다. 당시 오일쇼크의 여파로 국가적인 절전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일종의 작전이었던 셈이다. 유럽의 경쟁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대사가 급히 연락을 해와 2기 설비 계약은 결국 유럽과 일본, 미국과 골고루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포스코의 공식기록에 박정희 대통령이 포철을 13번 방문했는데 이날의 마지막 방문 날짜가 나와 있지 않은 그동안의 궁금증도 이 책에서 풀렸다. 이튿날 착공식에 참석하지 않고 영빈관에서 밤 새워 술을 마신 그가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저자 이대환 작가는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업적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라며 “산업화를 견인한 포항제철의 대성취에는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라는 `위대한 만남`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 만남이 시대적 위업으로 완성된 곳이 바로 포항”이라고 말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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