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 제256호로 지정된 공주 갑사의 철(鐵)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이다. 철로 만든 당간이라 오랜 세월 풍화 속에서도 견뎌내고 나무 당간과 달리 아직도 원형대로 남아있다. 갑사의 철 당간은 1331년 전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 위에 철 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게 해놓았다.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두 개의 지주 안에 세운 철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에 벼락을 맞아 4개는 없어졌다고 한다. 갑사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이 철 당간은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가 동서로 마주 서 있는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켜 1300년이 넘은 지금도 옛 모습을 잘 지키고 서있다.
필자는 당간지주를 볼 때마다 로마 바티칸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시스티나 경당이 떠오른다. 신자들의 친교와 예배를 위한 장소로 사용하는 이 건물은 1480년 옛 대경당(Cappella Magna)을 복원한 것이고 그 이름은 로마교황 식스토 4세(Papa Sisto IV)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오늘날 이곳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소집되면 경당의 지붕에 굴뚝을 설치하고 신호로 연기를 피어 올려 연기의 색으로 교황 선출 여부를 외부세계에 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500년 역사를 지닌 로마의 이 의식에 비하면 1300년이 넘은 신라의 당(幢) 의식은 그보다 800년이나 더 앞선 우리 조상들의 선지식이다. 비록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의 전통 당 의식은 없어졌지만 돌기둥처럼 남아있는 절 어귀의 당간지주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요즘은 산사의 안마당까지 승용차가 너무 쉽게 드나든다. 그래서인지 당간지주와 당간, 당의 뜻이 잊혀져가고 있다. 산사의 당간지주에 당간을 다시 세우고 당 의식을 되살려 보면 어떨까. 절집은 절집다울 때가 가장 성스럽고 아름답다. 요즘은 깊은 산속의 절집마저도 간혹 불사를 빌미로 전통건축기법을 벗어난 건축행위를 하곤 한다.
산사의 외관은 간소하면서 수수하고 어느 면으로는 겸허한 건축미를 풍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산사는 단아한 아름다움과 순박한 큰 맛을 겸하면서 인위적인 기교가 없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지닐 때 자연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