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제1야당인 국민의힘 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보궐선거 결과를 지켜보는 대구·경북 정치권은 오히려 뒤숭숭한 표정들이다. 승자의 저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 클랩, 캠벨 등 세 명의 엔지니어가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고,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발간한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1950년대에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는데 당시에는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기업들은 석유매장량을 추정해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는데 입찰자가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2천만 달러로 입찰가격을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땄지만 실제 석유매장량의 가치는 1천만 달러에 불과했고, 낙찰자는 1천만 달러의 손해를 보게됐다. 이때의 상황을 카펜과 클랩, 캠벨은 ‘승자의 저주’라고 이름 붙였다.

이같은 승자의 저주는 경쟁입찰이나 기업M&A에서 자주 일어나며, 때로는 정치판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면 올해 초 서울시장 선거가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을 때만 해도 상당수 국민의힘 지지자들 가운데서는 “서울시장 선거는 지는 게 대선에는 더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현재 국민의힘이 야당으로서 너무 무기력하고, 구심점이 확보되지 않고 있기에 서울시장 선거 패배를 계기로 완전히 판을 갈아엎는 체질개선으로 정계개편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보선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애초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돼 온 부산시장 선거는 물론이고 박빙승부가 예상됐던 서울시장 선거까지 국민의힘이 압승한 4·7보궐선거 결과는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보선 결과가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 부동산정책 실패 등에 대한 심판이 결과로 나타난 것일뿐 국민의힘을 지지해서가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이제까지 3% 이내 차이로 승부가 갈렸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20%에 육박하는 18.32%의 표차로 승부가 갈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존 여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도 있지만 야당도 획기적인 변신 없이는 언제든 지지율을 철회할 수 있다는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다. 차기 당대표 주자로 유력한 정진석 의원이 “포스트 김종인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 자칫 자리 싸움, 세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선 승리에 자만해 예전 고질병인 적전분열 자중지란을 되풀이할 경우 민심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대구·경북을 텃밭으로 둔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를 이루고 싶다면 화합하고, 통합하고, 개혁해야 한다. 대선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