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고액권 비축 늘어
지난해 환수율 24%로 ‘뚝’
은행마다 품귀현상 이어져
자영업자 비중 높은 대면 업종
부진도 수급 상황 악화시켜

“은행 4곳을 돌아다녔는데 5만원권을 1장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포항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명철(40·가명)씨는 19일 오후 5만원권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은행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는 ‘5만원권 출금불가’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김씨는 5만원권을 인출하기 위해 주변 은행 여러곳을 돌아다녔지만 5만원권을 출금할 수 있는 은행은 1곳도 없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고액권인 5만원권 품귀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5만원권 공급량을 더욱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이같은 현상은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5만원권 환수율은 24.2%에 그쳤다. 5만원권 4장 중 1장은 한국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2019년 환수율인 60.1% 대비 36% 가까이 떨어진 것이며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2009년(7.3%) 이후 가장 낮은 환수율이다.

지난해 전세계로 번진 코로나19로 대면활동이 어려워지고 가계살림이 팍팍해지면서 현금을 쥐고 있으려는 성향이 강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과거 금융 불안기에는 제조업·건설업 등의 타격이 컸으나 코로나 시국에는 숙박 및 음식점업·여가 서비스업 등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대면거래 업종이 부진했다. 자영업자는 3분의 2 이상이 금융기관에 현금을 입금하고, 음식·숙박업 등은 매출액 중 현금취득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업종이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따라 ‘비상용 현금’을 보유하려는 수요가 커진 영향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등 예비용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은은 5만원권을 적극 공급해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렇게 풀린 5만원권을 거래하는데 쓰지 않고 쌓아두려는 성향을 보였다. 주로 거래용 목적의 저액권과는 달리, 고액권의 경우 현금보유성향이 높았다. 시중 유동성이 가계 소비, 기업 투자 등 실물 경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월 말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로 한 만큼 대면활동이 가능한 시기가 앞당겨진다면 5만원권 환수율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현금 접근성이 제약될 우려가 높아진 것이 5만원권 품귀현상으로 이어졌다”며 “공급된 화폐가 적재적소에 공급될 수 있도록 화폐수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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