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성종 때 대간 박효원(朴孝元)은 승정원 회의 때 도승지 현석규(玄碩圭)가 삿대질을 일삼는 등 다른 승지들에게 무례를 범했다면서 탄핵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간 혼자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왕이 출처를 엄히 추궁한 결과, 승지 임사홍(任士洪) 등이 현석규를 쳐내기 위해 정보를 흘렸고, 박효원이 공개적으로 현석규를 탄핵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간 제도를 사적으로 오용한 자들은 엄한 처벌을 받았다.

조선 시대 풍문탄핵(風聞彈劾)은 어두운 시대에 공론만으로도 문제를 삼도록 해 고관대작의 도덕성을 높이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당쟁이 심화하면서 이 제도는 폐해를 양산했다. 순수한 ‘공론’은 사라지고 더러운 ‘당론(黨論)’만이 무성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인류가 발전시킨 민주주의는 그런 참담을 방지하고자 법치(法治)를 대원칙으로 삼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한사코 찍어내려는 여권(與圈)의 몰매질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판사 불법사찰’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 프레임을 들고나와서 검찰총장직은 물론 아예 감옥에 보내겠다’는 악심까지 드러낸다. 그러나 들고나온 혐의도 허술하거니와, 1년 가까이 지난 일을 새삼 끄집어낸 저의가 온당치 않으니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명분치고는 참으로 유치하다.

검찰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 법치의 일선 전문가 집단인 검찰 구성원들 거의 모두가 반기를 들었는데, 이 정권은 눈도 하나 깜짝 안 한다. 조국 전 장관의 말처럼 “검사들 모두 사표 받고 검사보라도 하고 싶어 하는 로스쿨 출신들로 다 채우는” 사변이 정말 일어나는 건가.

재판을 위해 판사의 성향과 이력을 관행적으로 알아본 것을 중죄(重罪)로 뒤집어씌우려는 행동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한 지청장은 “코치가 심판의 경력과 경기 운영방식, 스트라이크 존 인정 성향, 선수들 세평 등을 분석해서 감독과 선수들이 공유하면 불법사찰이냐”라고 비꼬았다는데, 공감이 간다.

지난 2012년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작성한 개념이 또다시 소환됐다. 그는 “대상이 민간인이거나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 등등”을 하는 게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했다.

채동욱과 윤석열을 찍어냈다고 정홍원 전 총리를 몰아세웠던 7년 전 추미애의 동영상도 다시 돌아간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은 손자병법의 진수다. 그런데 상대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중범죄가 된다고 욱대기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옛날 순 엉터리였던 풍문탄핵도 제3의 사찰 기관에서 탄핵 내용을 정밀조사하는 ‘추고(推考)’ 과정을 거치고, 사실이 아닐 때는 탄핵을 주장한 대간이 물러나야 했다. 대간들 전원이 한꺼번에 직책을 내려놓는 일도 있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야만(野蠻)의 풍문탄핵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