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내다
조바심내다
  • 등록일 2020.11.23 20:22
  • 게재일 2020.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주 병으로 ‘조바심’내는 할머니.

할머니가 조를 추수하고 있다. 창 넓은 밀짚모자를 쓰시고 동그마니 앉아서 조 이삭을 말려 두드리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손에 든 것은 법주 빈 병이다. 그 모습이 재밌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여쭈었다. 이거 떨어서 뭐 하실 건지, 자식들 오면 준다기에 자식은 몇이나 되는지, 얼마나 자주 오는지 묻자, 좋은 회사에 다닌다며 자랑도 하셨다.

친구 아들이 주말에 에버랜드를 다녀왔단다. 사진을 보니 신난 표정이다. 그런데 돌아다니다 용돈을 잃어버렸단다. 에고, 아까운 거,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 어릴 적 그날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삼촌이 집에 다녀가시면서 주신 용돈을 모으고 모아 운동회날에 군것질하려고 들고 갔다. 체육복 주머니가 얕아 어디서 흘린 건지 솜사탕 하나 겨우 사 먹고 하늘로 날아간 내 용돈. 학교 운동장 가의 나무 밑에서 기다리던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잃어버린 돈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울먹거리자 삼촌이 잃어버린 니가 죄 많다고 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길질을 하며 울어버렸다. 그걸 위로라고 하는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서럽다.

오래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상처를 줬다.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서 놀러 온 친구에게 넋두리했다. 그럼 그 사람이랑 다신 보지 말면 되겠네 한다. 그걸 위로라고.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거지. 누가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했나.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거지. 어줍잖은 충고를 하라고 했나. 속상하겠다 하며 밥이라도 먹든지 소주 한 잔이라도 따라주면 그만인 것을.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다. 운전면허처럼 위로면허도 따도록 법으로 정하면 좀 나아지려나.

타작한다는 말을 옛날에는 ‘바심’이라고 했다. 조를 추수하면 그것을 비벼서 좁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쉽게 비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방망이로 두드려서 떨어낸다. 쪼그린 할머니 옆에 앉아 법주 한 병 나발불고 해질 때까지 조바심이나 내야겠다.

/이지헌(구미시 양호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