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유림, 400년 갈등 넘어 ‘화해의 길’
영남 유림, 400년 갈등 넘어 ‘화해의 길’
  • 이창훈기자
  • 등록일 2020.11.22 20:29
  • 게재일 2020.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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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학봉 김성일 후손
퇴계 이황 사후부터 시작된
위패 서열 논쟁 끝내고
‘호계서원 복설 고유제’ 개최
호계서원 복설추진위원회는 20일 호계서원 복설(復設) 고유제 행사를 개최하고 400여년간 지속돼 온 영남유림 간 해묵은 갈등을 해소했다.

영남권 유림을 대표하는 400년의 묵은 갈등이 화해의 길로 들어섰다.

경상북도는 호계서원 복설추진위원회(회장 노진환)가 주최하는 ‘호계서원 복설 고유제’에 이철우 지사가 초헌관으로 참석한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이날 열리는 고유제는 호계서원의 복원 소식을 알리고 영남 유림의 대통합과 지역의 정신 문화 발전을 기원하는 자리다.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한국국학진흥원 부지에 자리 잡은 호계서원은 1만㎡의 부지에 13동의 서원 건물을 보유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다. 호계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1573년 여강서원으로 창건된 후 숙종 2년(1676년) 사액되면서 호계서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 후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은 채 남겨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1973년 임하댐 아래로 이건됐으나, 습기로 서원건물 훼손이 우려되자 지역유림 등에서 이건과 복원을 요청했다.

이에 경북도는 지난 2013년부터 총 사업비 65억원들 들여 도산면 서부리로 이건 및 복원을 추진해 지난해 말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부지에 복설했다. 복설된 호계서원은 ‘병호시비(屛虎是非)’라는 400년간 이어진 영남유림 간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징표다.

하지만 이러한 호계서원에는 영남을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가문과 학봉 김성일 가문의 400년에 걸친 갈등의 사연이 숨겨져 있다.

호계서원의 시작은 퇴계로 거슬로 올라간다. 퇴계가 세상을 뜨자 안동의 퇴계 제자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의 후손들은 안동 여강서원에 따로 퇴계를 모시기로 했다.

문제는 여강서원에 퇴계의 제자 류성룡과 김성일의 위패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사당 중앙에 퇴계의 위패를 놓은 뒤, 둘 중 누구의 위패를 상석인 퇴계 왼쪽에다 두어야 하느냐를 놓고 후학들끼리 논란이 빚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두 가문의 학맥이 분파하면서 서열 문제는 퇴계의 적통에 대한 시비로 이어졌고 갈등은 격화됐다.

‘병호시비’(屛虎是非)라는 이름까지 붙여진 이 갈등은 안동 유림을 둘로 갈라 놓았다. ‘병호시비’에서 ‘병’(屛)은 류성룡을 배향한 병산서원을, ‘호’(虎)는 김성일 학맥이 차츰 장악한 호계서원을 이른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안동 최고의 서원이었던 호계서원에서 위패를 모시던 사당은 사라졌다. 호계서원에 있던 퇴계의 위패는 도산서원으로 갔고, 류성룡의 위패는 병산서원으로 갔으며, 김성일의 위패는 낙동강변의 임천서원으로 옮겨졌다.

첫 번째 화해시도는 흥선대원군은 당시 안동부사를 불러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지시하면서 이뤄졌다. 하지만 양쪽 유림 1천여 명이 모여 화해를 시도했으나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지난 2009년 양쪽 문중이 나서면서 해결의 전기를 맞았다. 문중 대표가 ‘류성룡 왼쪽, 김성일 오른쪽’이란 위패 위치를 합의하면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안동 유림들 사이에서 ‘이 문제는 종손 간에 합의할 사항이 아니라 학파 간에 결론 내려야 하는 것’이란 주장이 나오면서 대립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 마침내 화해가 이뤄졌다. 류성룡을 퇴계 위패의 동쪽에, 그리고 김성일을 서쪽에, 그 옆에 김성일의 후학인 이상정을 배향하자는 제안이었다. 한쪽에는 높은 자리를, 다른 한쪽에는 두 명의 자리를 보장하는 화해안이었다.

이철우 도지사는 “이번 호계서원의 복설은 영남유림의 합의에 의해 대통합을 이루어낸 성과”라며 “화합, 존중, 상생의 새 시대를 여는 경북 정신문화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러한 화해와 대화합의 상생 메시지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통합신공항 건설과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정신적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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