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생명력이 숨 쉬는, 포항사람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포항의 생명력이 숨 쉬는, 포항사람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 등록일 2020.11.09 20:06
  • 게재일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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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16)죽도시장
죽도어시장

포항을 알고 싶다면 어디부터 가야 할까?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죽도시장은 단연 앞 순위에 놓인다. 그렇다. 죽도시장을 모르고서야 포항을 안다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어물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문어와 날랜 칼 솜씨로 생선을 손질하는 아낙, “잘 오소, 어서 사이소, 싱싱한 오징어가 좋니더” 외치는 상인의 구성진 목소리를 접해 보고, 건어물상, 청과상, 약재상, 떡집 등을 느긋한 걸음으로 슬렁슬렁 둘러본 후에 수제비 골목 좌판에 앉아 낯선 사람과 어깨를 부대끼며 뜨거운 국물 후후 불어가며 4천원짜리 수제비나 칼수제비 한 그릇쯤은 먹어봐야 비로소 죽도시장을, 포항의 속살을 잠시나마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

포항 원도심 한복판에 수많은 상점과 노점상이 모여 있고, 포항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죽도시장은 지역 서민경제의 심장이자 생명력의 원천이다. 동해안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14만8천760㎡ 면적에 2천5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으며, 실제로는 어시장과 농산물시장, 그리고 죽도시장 세 개를 아우르고 있는 게 죽도시장이다. 총 25개 구역에 수산물, 건어물, 농산물, 식품, 청과, 떡, 약재, 의류, 한복, 포목, 이불, 주방용품, 제수용품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고 있어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포항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죽도시장에 가봐야 한다.

 

2천500여 점포 들어선 동해안서 가장 큰 시장
어시장·농산물시장·죽도시장 등 3개 시장이
14만8천여㎡ 면적에 25개 구역으로 나눠져
6·25 전쟁 후 칠성천 복개주차장 쪽 부지에
자연발생적으로 좌판 형성… 1971년 시장 허가
포항제철소 건설 이후 외형 키우며 성장해 와
포항의 첫 새벽 깨우는 죽도어시장선 매일
물 좋고 값 좋은 생선 차지 위한 수싸움 치열
어시장에만 160여 개 점포·200여 개 횟집
수 많은 좌판서 제철 생선 등 판매 이뤄져
2000년대 들어 아케이트 설치 등 현대화 큰 공
쾌적한 공간서 전통시장만의 매력 느낄 수 있어

□ 포항의 역사와 함께해온 동해안 최대의 전통시장

한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은 그 지역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하기 마련이다. 강과 바다를 접하고 있는 포항은 역사적으로 타지역과 교류하기에 용이한 곳으로, 포항을 대표하는 설화인 연오랑세오녀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1732년 함경도에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환곡을 저장하는 창(倉)이 포항에 개설된 것도 바닷길을 이용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서해 강경장, 남해 마산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장이 포항 부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형산강 덕분이다. 부조장은 포항 연안의 청어와 소금을 내륙으로 가져다 팔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농산물을 거래하는 교역의 요충지로 이름이 높았으나 일제강점기에 포항과 부산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 철도가 부설되는 등 환경이 변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보면, 죽도시장은 부조장의 전통을 잇는 큰 장터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포항의 시장 상황은 어떠했을까. 최근 발간된 두 권의 저서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포항 시장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상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이다. 일본인이 포항에 들어왔을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시장 거래 외에 점포를 갖춘 상인은 볼 수 없었다. 당시 포항에는 여천시장이 있었고 근처에는 연일시장, 흥해시장이 있었다. 특히 명태 거래에서 조선 남부 3대 시장 중 하나로 손꼽히던 부조시장에서는 생활필수품뿐만 아니라 많은 해산물과 곡물이 거래되고 있었다.”

<김진홍 엮음, ‘조선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 글항아리, 2020, 287쪽>

“(포항은) 1914년 제1기 축항 건설 이후 제3기의 건설 완료로 이전의 부산을 경유한 수송에서 직접 수송이 되어 본격적인 발전으로 내디뎠다. 또한 1914년 도야마현(富山縣)의 하마다(濱田) 등이 개량한 청어정치(定置)를 경영하여 성과를 냈으며, 1917~18년경부터 하야시가네(林兼) 등의 운반선이 내항하여 급속히 발전하였다. 이 무렵까지는 어업 근거지라고 하기보다는 물자 교역의 시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요시다 케이이치 지음, 박호원·김수희 옮김, ‘조선수산개발사’, 민속원, 2020, 614~615쪽>
 

죽도시장 식육점
죽도시장 식육점

요컨대 일본인들이 포항에 이주하기 전부터 여천시장, 연일시장, 흥해시장, 부조장이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운영되었다. 또한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수산업을 일으키기 전의 포항은 어업 근거지라 하기보다는 물자 교역의 시장 성격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1949년 8월 포항은 읍에서 시로 승격되지만, 6·25전쟁 때 시가지가 초토화되면서 여천시장도 사라진다. 전쟁 후에 지금 칠성천 복개주차장 쪽에 좌판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고, 이것이 점차 몸집을 불리면서 상설시장이 되었으며, 1971년 11월 시장 허가를 받은 것이 죽도시장이다.

죽도시장이 동해안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포항제철을 빼놓을 수 없다. 포항종합제철 제1기 종합 준공식이 열린 것이 1973년 7월 3일, 이때를 전후로 포항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물자도 많이 필요해지면서 죽도시장도 외형을 키우게 된다. 포항시와 영일군을 합한 인구는 전쟁 직후인 1954년 20만9천369명이었으며, 1970년 27만8천144명을 기록한다. 1973년 처음으로 30만 명을 넘어 30만7천548명이 되었고, 1981년 40만1천772명, 1992년 50만273명을 기록하며 상승곡선을 그린다(‘포항시사’참조). 포항이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발돋움하며 많은 인구가 유입하는 과정에서 죽도시장도 덩치를 키우게 되었고, 철강산업이 정체되면서 포항과 죽도시장도 성장세를 멈춘 것이다.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

□ 가장 먼저 새벽을 깨우는 죽도 어시장

포항의 첫 새벽을 깨우는 곳은 죽도 어시장이다. 온 세상이 깊이 잠들어 있을 새벽 4시 30분께 죽도 어시장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빛을 밝힌다. 트럭이 도착해 생선 궤짝을 내려놓으면 상인들도 재바르게 움직인다. 자정 무렵 위판장에 도착한 상인들은 쪽잠을 자다가 위판장에 생선이 들어오는 시간에 목이 긴 고무장화를 신고 새날을 시작한다.

문어, 대게, 대구, 방어, 우럭, 가자미, 도루묵, 소라 등 물 좋은 생선이 위판장 바닥에 정렬된 직후 요란한 종소리를 울리며 빨간 모자를 쓴 경매사가 둥장하자 검은 모자에 각자의 고유번호를 단 중매인들도 우르르 모여든다. “허이∼ 허허이∼” 경매사가 굵은 목소리로 특유의 리듬을 타며 경매를 이끌어가고, 중매인들은 두툼한 점퍼 속에 숨긴 손을 펼쳐 보이며 갖가지 신호를 보낸다. 물 좋고 값 좋은 생선을 차지하기 위한 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생선마다 낙찰자를 만나고, 하루를 준비하기 위한 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사이 죽도시장에 여명이 밝아온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곳도 어시장이다.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이 급성장하면서 전통시장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고, 죽도시장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시장은 전국 곳곳에서 선도 높은 생선들이 모여들고, 가격도 괜찮은 편이어서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시장에만 160여 개의 점포와 200여 개의 횟집이 있으며, 그보다 많은 좌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죽도어시장 위판
죽도어시장 위판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 어시장에 가면 부산 고등어, 제주 생갈치, 목포 조기, 서해안 꽃게를 볼 수 있고, 제철을 맞은 방어도 만날 수 있다. 생오징어 다섯 마리에 2만 원인데, 제주 생갈치는 열 마리에 2만 원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큰 대게는 세 마리에 10만 원, 2㎏ 문어는 5만 원 정도가 요즘 시세다.

찬바람이 불면 죽도 어시장은 과메기 세상으로 바뀐다. 상점마다 쫀득쫀득한 과메기가 넘쳐난다. 꽁치 과메기가 대부분이지만, 과메기 원조인 청어 과메기도 이따금 볼 수 있다. 겨울철 죽도시장 경기는 과메기가 쥐락펴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과메기가 많이 팔려야 어시장에도 활기가 돈다.

죽도 어시장에는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명물이 있다. 하얀 묵처럼 생긴 개복치는 포항에서 혼사나 장례같이 큰일을 치를 때 내놓는 귀한 음식이다. 생김새는 아귀, 물곰(곰치) 같은 일종의 못난이 어류인데, 큰 개복치는 길이 3m에 무게는 1t 가량 된다. 토막 낸 상어고기를 일컫는 돔배기는 제사 때나 볼 수 있는 음식으로, 꼬치산적을 굽거나 찜, 탕 요리를 하기도 한다. 고소한 고래고기 맛을 못 잊어 대낮부터 어시장 가게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고래, 상어, 개복치 같은 대물은 아무나 손댈 수 없다. 초보자는 아무리 날카로운 칼을 잡아도 살집에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 노련한 칼잡이라야 부위별로 깔끔하게 해체할 수 있다. 대물이 해체될 때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장면도 죽도 어시장의 진풍경이다.
 

죽도어시장 상인
죽도어시장 상인

□ 현대화와 함께 전통시장의 매력도 남아 있는 곳

전통시장에 닥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죽도시장은 2000년대 들어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시설 현대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구간에 아케이드가 설치돼 전국 어느 시장보다 쾌적한 공간을 자랑하고 있다.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도 전통시장의 매력은 남아 있다. 술빵, 국화빵, 붕어빵, 대게빵, 호떡은 물론, 감주, 콩국, 우뭇가사리묵, 달고나, 강냉이 등 추억의 주전부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도 죽도시장이다.

시장이 현대화되고 질서가 잡히기 전에는 악다구니가 넘쳤다. 상인들끼리 머리채를 움켜쥐고 장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며 살벌하게 싸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그 싸움은 척박한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 공납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야 했고, 그러려면 자신의 손바닥만한 영역이나마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다. 그렇게 죽도시장의 너른 품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푼돈이든 큰돈이든 벌어 식솔을 먹여 살렸다.

죽도시장은 꼭 사야 하는 물건이 있어야 가는 곳이 아니다. 일 없이도 사람 구경, 물건 구경하러 가는 곳이 죽도시장이다. 싱싱한 횟감 사라는 고함 소리, 가격 흥정하는 소리, 철지난 유행가가 뒤섞여 있고, 수제비를 푸짐하게 담아주는 후덕한 아주머니, 묵

묵히 전을 부치고 있는 무표정한 아주머니, 과일 몇 알 소쿠리에 담아 놓고 좌판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할머니 등 수많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죽도시장이다. 숱한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고, 추억이 묻혀 있으며, 가슴 뜨거워지는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 그리하여 죽도시장은 포항사람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끝>
사진/안성용

글/김도형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예담출판사 편집장 역임. 현) 글로벌 해양수산 매거진 ‘THE OCEAN’편집위원, 현) 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 현) 한국단백질소재연구조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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