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과 파도에 오래된 이야기가 익어가는 곳
바닷바람과 파도에 오래된 이야기가 익어가는 곳
  • 등록일 2020.10.28 19:59
  • 게재일 2020.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13) 구룡포
구룡포항
구룡포항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구룡포는 장기반도의 동쪽에 해당하는 동해안 최대 어항이다. 어선들이 러시아 수역까지 조업에 나서는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청어·방어·오징어·대게 등 어자원이 풍부하고 성게·미역·전복 등 신선하고 질 좋은 해산물이 모이는 곳이다. 밤이면 오징어배의 집어등 불빛이 밤바다를 수놓은 곳, 새벽이면 어판장에 대게, 홍게가 희망을 쏟아내는 곳, 겨울철 포항의 대표 특산물 과메기로 유명한 곳, 해안 절경을 따라 바다와 바람의 이야기가 익어가는 곳, 청보리와 해국, 유채와 억새가 피어 절경이 펼쳐지는 곳, 많은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곳, 바로 구룡포다.

 

황금어장 이름 알려지며 일본인들 이주

그 시절 목조가옥 남아있는 장안동 골목길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드라마 촬영지 인기

조선시대 군마 기르던 장기목장성터는

해안둘레길과 어울려 휴양지 매력 뽐내고

한반도 최동단 석병리엔 매일 희망 오른다

일본인 가옥거리
일본인 가옥거리

□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가 근대적 항구로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구룡포가 황금어장으로 알려지면서 1906년부터 일본인들이 구룡포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일본인들은 현대식 방파제를 건설하면서 구룡포를 동해안 최대 어업기지로 만드는 기반을 닦았다. 1932년 구룡포에 정착한 일본인은 287가구 1천161명에 이르렀다. 지금 구룡포에는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가옥 40여 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통조림 가공공장은 물론 음식점, 제과점, 주점 등이 들어서면서 구룡포는 최대의 상업지구로 이름을 떨쳤다. 그래서 이 상업지구인 장안동을 ‘종로거리’라 부르기도 했다. 구룡포 장안동 골목은 1991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거리 촬영장으로 이용되었고, 2019년 인기리에 방영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했다.

장안동 골목길은 새 단장을 거쳐 일본인 가옥거리, 혹은 근대문화역사거리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구룡포 근대역사관이다. 이 역사관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목조 가옥이다. 그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성공해 큰 부를 쌓았고, 건물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직접 운반해왔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한국과 일본의 건축가들이 연구대상으로 삼을 만큼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명성이 나 있다.

 

석병리 땅끝마을 조형물
석병리 땅끝마을 조형물

□ 구룡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룡포공원

구룡포 항구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구룡포공원에 가야 한다.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공원에 이를 수 있고, ‘용의 승천 새빛 구룡포’라는 작품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구룡포’라는 명칭은 신라 진흥왕 때 지금의 용주리에서 용 아홉 마리가 승천한 포구에서 유래되었다. 이 작품은 용들이 서로 어우러져 하늘로 승천하는 형상으로, 용의 승천은 구룡포가 하늘길로 통하는 유일한 땅임을 의미한다. 공원에는 선원들의 무사고를 빌던 용왕당도 있다.

돌계단 양쪽으로 비석을 세워놓았는데, 왼쪽에 61개, 오른쪽에 59개의 돌기둥이 있으며 비석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일군수 김우복, 영일교육감 임종락, 제일제당 구룡포통조림공장 하사룡, 이판길 등. 단기 4276년(1943년) 7월에 세웠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 계단과 비석은 일본인들이 세운 것으로,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집단 거주지를 만든 후 뒷산에 공원을 만들고 비석에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들이 떠나자 시멘트를 발라 덮어버린 뒤 비석을 거꾸로 돌려 그곳에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과메기 덕장
과메기 덕장

□ ‘조선의 마지막 군마’를 기르던 장기 목장성

영일에도 목장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그곳에 나고 자란 사람도 모른다. 영일 장기읍의 장기는 긴 장(長)에, 말갈기 기(<9B10>)자를 쓰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목장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아해한다. 도대체 영일 장기목장은 어디로 간 것일까? 조선시대 최대의 국영 목장이었던 장기목장을 누가 우리의 기억에서 지운 것일까? (중략)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영일 장기목장에서는 244명의 목자가 1천여 필의 말을 사육하였다. 장기목장에서 나고 기른 말을 ‘장기 말’이라고 하고, 조선 군마 중 최고로 쳤다.

-이정한 ‘장기목장’ 중에서, ‘조선의 마지막 군마’(김일광)

‘조선의 마지막 군마’는 조선시대에 나라가 운영하던 가장 큰 목장인 영일 장기목장과 그곳에서 나고 자란 조선 최초의 군마인 장기마에 관한 김일광의 동화다. 장기목장성은 일명 석병성(石屛城)이라고 한다. 구룡포읍 창주리 석문동에서 시축한 성벽은 눌태리 계곡을 거쳐 응암산을 서쪽으로 돌아 공개산 서북편 산정을 지나 동해면 흥환리 배일리에 이르는 지대에 축성해 그 동편 전역을 목장으로 사용하는 길이 25리, 높이 10척에 달하는 장성(長城)이다.

장기(長<9B10>) 동을배곶(冬乙背串)에 대한 세종 14년의 기록에 “이제 경상도 동을배곶에 이미 목장을 설치하였사오니, 청컨대 영일과 장기 두 고을 수령으로 감목관을 겸하게 하소서.”라고 남아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장기목장에서 말을 방목하기 시작한 것은 1432년 이후로 보이며 인근 지역 영일과 장기의 수령이 함께 관리하도록 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흥환리 진골에서부터 구룡포 사이에 목장성터가 남아 있으며, 1882년에 세워진 목장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감목관 민치억 영세불망비’와 흥인군 ‘이최응 영세불망비’ ‘울목김부찰노연영세불망비’가 있다. 전하는 말로는, 목장 입구는 현 구룡포읍 구룡포 3리에 얼마 전까지 있었던 큰 석문이며, 목장의 끝은 앞의 기념비가 서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원래 기념비는 바닷가 한적한 곳에 방치되다시피 한 것을 주민들이 지금 장소로 옮겼다.

영일권에는 조선 초기부터 장기목장 외에도 각 군현에 군소 목장이 있었다. 현재 흥해읍 곡강 일대에 봉림목장지, 초곡, 마장동에 마장목장지, 죽장 상옥에 경전목장지, 오천읍 일월동에 일월목장지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 각 군현에 설치되었던 군소 목장은 1651년 마정을 개혁할 때 모두 폐하여 울산목장 소속의 장기목장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장기목장성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연결하는 탐방로가 있다. 장기목장성은 말을 방목해 키우던 석성으로, 구룡포 돌문에서 동해 흥환까지 7.6㎞의 호미반도를 가로질러 2~3m 높이의 돌울타리를 쌓은 것이다. 훼손된 구간을 제외하더라도 5.2㎞가 존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성이다. 구룡포 말목장성길(구룡포초등학교~발산리 봉수대)에 이어 동해면 흥환리에서 발산리 봉수대까지 3.1㎞구간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 연결된다.

오랜 역사를 품은 장기목장성과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펼쳐지는 둘레길이 호미반도 해안둘레길과 발산리 모감주나무, 병아리꽃나무 군락지와 어울려 매력적인 휴양지로 입소문이 나 있다. 매년 가을, 구룡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해질 무렵 출발해 말목장성터를 거쳐 봉수대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는 구룡포 말목장성 달빛산행 축제는 구룡포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삼정리 주상절리
삼정리 주상절리

□ 주상절리의 절경이 펼쳐지는 ‘삼정리’

구룡포에 와서 삼정리를 지나칠 수 없다. 삼정리는 주상절리(柱狀節理)의 마을이다. 신생대 제3기, 6천500만 년 전부터 170만 년 전 사이의 어느 날, 지금의 구룡포읍 삼정리에 대폭발이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고 나면 용암은 굳게 되는데, 이때 절리(節理)가 형성된다. 절리란, 외부에서 가해진 어떤 힘으로 인해 암석에 생겨난 금을 말하며, 기둥 모양이 발달하면 주상절리라 한다. 삼정리 주상절리는 5∼6각형의 감람석 현무암으로 이뤄진 돌기둥이 높이 5∼15m의 절벽을 이루고 있다. 1997년 발견돼 2000년 4월 천연기념물 제451호로 지정된 포항 연일읍 달전리 주상절리 못지않은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삼정리 해안 100여m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주상절리는 파도에 깎여 바다에 삐죽 솟아 있는 인근 주상절리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태양이 사는 곳, 땅끝마을 석병리

이곳은 이제 그대로,

갯목 시,

해맞이 군,

일어서는 바다 읍!

- 박남철, ‘위대한 고향 포항시’ 부분

1980~1990년대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포항 출신 시인 박남철은 ‘포항 시’와 ‘영일군’의 주소를 이렇게 적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섬을 제외한 우리나라 최동단을 경북도 구룡포읍 석병리(石屛里)로 표기하고 있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조형물로 만들어 세웠다. 지구본 모양의 둥그런 돌에 우리나라 지도를 양각하고 거기에 동쪽의 끝단을 표시해놓았다. ‘한반도 동쪽 땅끝,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 동경(경도) 129 35 10, 북위(위도) 36 02 51’이라 새겨놓은 것이다.

석병리는 마을을 끼고 있는 긴 해안선이 깎아놓은 듯한 기암절벽으로 되어 있다. 그 모습이 병풍을 세워둔 것 같다 하여 석병리가 된 것이다.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해맞이의 고장, 태양이 사는 곳 석병리에서 이렇게 외친다.

땅끝마을에서 이른 새벽을 보라!

가장 먼저 쏟아 오른 희망을 보라!

한 해를 살아갈 힘이 있는 곳에서.

<사진/안성용>

글/김동헌

시인, ‘푸른시’동인, 2003년 ‘포항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2008년 ‘문장’ 신인상 수상, 포항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시집 ‘지을리 이발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