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 6년 만에 별세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의 총수라는 차원에서 이 회장의 서거는 큰 사건이다. 그런데 이 상사(喪事)에 일부 정치권이 조의를 표하면서 초를 치듯이 험담을 섞어내는 천박한 현상이 또다시 벌어졌다. 그가 이뤄놓은 경제적 업적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장례 기간만이라도 티 뜯기는 삼가는 것이 기본예의 아닌가. 참으로 한심한 풍경이다.

집권당을 대표하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비판’으로 덧칠된 후렴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한 이상한 조의문이 눈에 띈다. 그는 조의문에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토를 달았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는 촌평을 섞었고,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 회장은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고 쪼았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뜬금없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해 “당당하게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의당은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이 밝혔다.

근대화의 주역인 김종필 전 총리와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사후 평가를 두고 벌어졌던 볼썽사나웠던 분란이 새삼 떠오른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의 사거(死去)에 즈음하여 그 삶에 대한 공과(功過) 평가는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장례 기간도 못 참고 성급하게 무덤에 침을 뱉듯이 악담을 퍼붓는 저급한 문화는 진실로 부끄러운 참상이다.

‘명복을 빈다’면서, 대답도 반박도 할 수 없는 망자를 향해 살아 있을 적의 일들을 시시콜콜 적시하며 굳이 강퍅한 주장을 펼치는 일은 추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으뜸 기업이 된 ‘삼성’으로 인해 우리 국민 각자의 삶이 나아진 부분이 분명하게 있음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나. 고인의 어록처럼 아직도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야”할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