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 등록일 2020.10.22 18:33
  • 게재일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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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1950년대 초 미국 미시간 주의 한 유사종교 교주가 신의 계시라면서 이런 예언을 했다. “12월 21일 대서양 바닥이 융기해 해안선이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 프랑스는 가라앉을 것이며, 러시아는 거대한 바다가 될 것이다. 로키산맥 위로는 엄청난 물살이 밀어닥치리라.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그 교주는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만 UFO가 와서 구출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날이 되어도 그들이 바라는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종말론을 믿었던 기존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조증 환자처럼 기쁨에 겨워 날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기도했더니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40여 년 후에도‘천국의 문’이라는 종교 단체가 비슷한 종말론을 들고 나왔다. 그 단체의 신도들은 1997년 지구에 가장 근접할 예정이던 ‘헤일밥’이란 혜성의 뒤에 저들을 구원해 우주로 데려가 줄 우주선이 따라온다고 굳게 믿었다. 신도들 중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던 혜성을 더 자세히 보려고 값비싼 고해상도 천체 망원경을 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헤일밥 혜성이 지구를 지나갔지만 천국의 문 신도들이 기다리던 우주선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예정대로 구원받아 우주로 가려면 세속의 껍질(신체)을 벗어야 한다고 믿은 회원 39명은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 같은 종말론에 관련한 사건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ce)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인지부조화’란 개념은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0년대에 출간한 책 ‘인지적 부조화 이론’을 통해 제기된 용어이다.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편함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태도와 태도, 태도와 행동이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이 존재하는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자신의 착각이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와는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페스팅거의 주장이다. 가령 담배가 발암물질이며 흡연 때문에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 담배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거나 흡연을 하면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허황된 종말론신앙 못지않게 그릇된 이데올로기의 맹신도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동권 선배들에게 포섭되어 오로지 좌경이념에 몰입해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념이 부정되는 인지부조화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노선을 바꾸기보다는 대부분 자기합리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현상을 보인다. 심지어 온갖 궤변과 억지도 서슴지 않는 확증편향의 광기에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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