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갑옷 입고… 화려하고 찬란한 신라시대로 여행
말 갑옷 입고… 화려하고 찬란한 신라시대로 여행
  • 사진 이용선기자
  • 등록일 2020.08.13 20:00
  • 게재일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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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⑩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전경. 1975년 7월 현재의 위치에 본관을 신축해 이전하고, 같은 해 8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전경. 1975년 7월 현재의 위치에 본관을 신축해 이전하고, 같은 해 8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지상에 유토피아(Utopia·불합리와 부조리가 사라진 완벽한 사회)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걸 증명한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자.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빈틈없는 온전한 세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다. ‘유토피아가 실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천국은 유토피아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어떤 방식으로건 이상사회(理想社會)를 꿈꿔 왔다. 그 연장선에서 소설가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도서관을 유토피아 혹은, 천국이라 지목했다. 축적된 인류의 정신적 자산이라 할 책이 진열된 도서관을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장소로 본 것이다. 수긍이 가능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은 어떨까? 의미와 가치를 동시에 지닌 책을 포함한 고고학적 자료와 역사적 유물, 여기에 갖가지 예술품 등을 한데 모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박물관. 이곳 또한 실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닐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 여기에 물난리와 태풍까지 겹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기 힘들어진 2020년 여름을 겪는 이들에겐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란 문장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답답함과 우울함이 모기떼처럼 밀려오는 폭염과 폭우의 나날. 밑으로만 가라앉는 기분을 달래려 경주로 가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과연 ‘우리 안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신라역사관·신라미술관·월지관 구성
성덕대왕 신종·고선사지 삼층석탑 등
불상·토기·기와 등 귀한 유물 ‘한눈에’

신라 사람들이 말을 위해 준비한 ‘갑옷’
23일까지 ‘말, 갑옷을 입다’ 특별전 개최
흥미·호기심 자극하는 역사유산 ‘가득’


◆ 신라의 역사와 핵심적 문화·예술품을 한곳에서

‘뚜벅이 여행자’라면 터미널에서 경주시 인왕동에 자리한 박물관까지 걸어보길 권한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경주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다.

대릉원, 황리단길,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을 친구 삼아 국립경주박물관까지 유유자적 걷는다면 택시 안에선 볼 수 없는 세세한 풍광들과 만나게 된다. 이 40분쯤의 즐거움은 흐르는 땀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때가 때이니만치 경주박물관 입구에선 입장객들의 체온을 체크하고,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엔 동시 입장객의 숫자도 제한해 보다 안전한 관람을 유도한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커다란 종(鐘)과 시원한 그늘이 사람들을 반겼다. 군데군데 마련된 벤치 중 한 곳에 앉아 경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열었다. 눈앞으로 국립경주박물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펼쳐진다.

“경주박물관에선 압축된 신라 천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경주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로 들러 미리 공부한 후 곳곳의 문화유산을 만나면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박물관은 대표 전시관인 신라역사관을 비롯해 신라미술관, 월지관 등의 상설전시관 세 곳과 기획전시가 열리는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신라역사관은 신라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일련의 역사를 나눠 전시한다. 신라 불교 미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신라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월지관은 동궁과 월지의 발굴조사를 토대로 출토 유물을 정리해둔 전시관이다. 상설전시관에선 전시해설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박물관 뜰에 전시된 국보급 문화재다. 이곳을 둘러보며 성덕대왕 신종과 고선사지 삼층석탑 등 귀한 유물과 만나보자.”

기자가 경주박물관을 찾은 날은 여름 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온 어린 학생들이 주된 관람객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전시관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뛰어다니지 않았고, 의젓하게 신라의 불상과 토기 등을 살피며 관람 매너를 지키고 있었다.

신라역사관에선 열 살 남짓의 남매가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설명해주는 젊은 아버지의 조용한 목소리에 흥미롭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이 몹시도 다정해 보였다.

◆ 박물관,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공간

여간해선 직접 보기 힘든 국보 제29호 성덕대왕 신종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을 살핀 뒤 입장한 신라역사관은 4개의 전시실로 운영되는 공간.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1천 년 가깝게 이어져온 신라의 역사, 그 시작과 끝을 짧은 시간 안에 요약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첫 번째 전시실엔 구석기 시대부터 6세기 초 신라가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설명돼 있다. 이 시기는 신라가 천년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때다.

제2전시실에 들어서면 “신라는 황금의 나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정교하게 제작된 각종 금·은 장신구 수백 점이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지금은 전시환경 개선사업이 진행 중인 3전시실과 4전시실에선 신라의 영토 확장과 중앙집권제 국가로의 성장 과정, 통일신라시대의 문화적 특성, 신라 멸망의 이유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사업이 완료되는 올해 11월 말 이후면 이 두 전시실도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대구교육박물관 김정학 관장은 최근 출간된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를 통해 역사를 주제로 한 박물관의 중요성과 지향점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새겨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역사 공부의 가장 큰 덕목은 그것이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옛것에 미루어 새로움을 발견하고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삶을 생각하면,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은 참으로 귀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중략) 박물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규모의 장대함보다 콘텐츠를 통한 체험과 감동의 크기다.”

사실 역사를 그저 흘러간 시간의 부스러기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과연 그 믿음이 옳은 것일까?

과거에 기대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미래를 계획하는 데에도 과거는 중요한 재료로 역할한다. 바로 이 과거의 총합이 역사가 아닐지. 그렇기에 현인(賢人)들은 “역사를 배척하고는 앞날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국립경주박물관은 배척해서는 안 될 귀한 역사 유산을 가득 담은 서라벌의 보물인 동시에,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양질의 콘텐츠를 다수 간직한 ‘미래지향적 공간’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경주박물관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말, 갑옷을 입다’ 특별전시회의 모습.
경주박물관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말, 갑옷을 입다’ 특별전시회의 모습.

◆ 빼놓을 수 없는 월지관과 신라미술관

마음먹고 온 길이니 월지관과 신라미술관도 빼놓을 수 없었다. 금동용머리장식과 금동심지가위 등 보물급 유물 여러 점이 여행자를 기다리는 월지관에선 통일신라시대의 왕실·귀족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1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레바퀴 자국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불교미술실, 황룡사실, 국은기념실로 구성된 신라미술관은 남산 장창골 미륵삼존불,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말탄무사모양 뿔잔 등을 전시하고 있다. 족히 일흔은 넘어 보이는 노부부 한 쌍이 백률사 약사불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이 따뜻하고 애틋했다.

특별전시관에선 ‘말, 갑옷을 입다’는 타이틀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왜 사람이 아닌 말에게까지 갑옷을 입혔을까?

신라의 말 갑옷과 말 투구는 물론 백제와 고구려의 다양한 말 관련 유물이 관람객들의 흥미와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특별전은 8월 23일까지 열리니 위 의문에 대한 해답은 경주박물관을 찾아 직접 풀어보시길.

꽤 넓은 박물관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거닐다 보니 3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어린이박물관과 수장고 전용 건물 신라천년보고(寶庫)의 로비전시실은 다음 기회에 조카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돌아오는 버스 안. 국립경주박물관이 ‘우리 안의 유토피아’ 중 한 곳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기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지금도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는 것.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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