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두 규

사월도 비 개인 눈부신 날에

지상의 가장 훌륭한 거처라도 도시를 떠난다

투명한 이파리들의 속살에 눈이 뒤집혀

딴살림 차리러 간다

신갈나무다 후박나무 같은 것들의

그 어디쯤에 숨어 사는 목숨을 여생을 나리라

그동안 10원이라도 더 싼 주유소 찾아다니느라 고생했다

대여섯 장의 카드에 포인트 적립하느라 수고했다

여기저기 눈치 보며 발맞추어 사느라 애썼다

하지만 사월도 비 개인 눈부신 날에

더는 견딜 수 없어 그대를 떠난다

헐렁한 중학생 모자를 쓰고 올라와 만난

나의 꿈 나의 사랑 나를 키워준 도시

시의 제목이 품은 음역이 넓고 재밌다. 그동안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살았던 도시를 내려서고 떠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있다.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고, 카드 포인트를 꼼꼼히 적립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을 감당하느라 애썼던 도시생활이었다,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알뜰살뜰 바쁘게 살아온 도시를 버리고 떠나고자 한다. 투명한 이파리들의 속살 속으로, 생명의 진액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려는 시인 정신을 읽는다. 나를 잃어버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던지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잔잔한 감동을 거느린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