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자연·빛·소리를 담아 아름다운 교회건축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교회’.

최고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현대건축 최고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1887∼1965). 1955년 5년간의 공사 끝에 건축사의 이정표가 될 또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프랑스 동부, 인구가 채 3천명이 되지 않은 시골마을 롱샹(Ronchamp)의 높은 언덕에 세워진 기념비적인 교회건축. 편히 롱샹성당으로 불리는 이 교회의 정식명칭은 ‘롱샹의 높으신 성모성당’이라는 뜻의 노트르 담 뒤 오 드 롱샹(Chapelle Notre-Dame-du-Haut de Rochamp)이다.

시카고 건축학파를 이끌며 근대 건축의 첫 장을 펼쳤던 루이스 헨리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로 건축을 규정했다. 1908년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루스는 ‘장식은 범죄다’라고 선언했다. 르 꼬르뷔지에는 이 모든 금기를 깨고 충분히 기능하지만 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시선의 방향이 달라지면 건축물의 형태도 달라진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그런 것처럼, 베르니니의 조각상이 그런 것처럼 르 꼬르뷔지에의 롱샹 교회 또한 하나의 시점에 형태를 잡아두지 않는다.

백색의 몸은 묵직한 콘크리트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콘크리트의 재료적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시각적 무게감이 한 층 더 할 것 같지만 롱샹의 건축 언어는 다른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어느 한 곳도 이러겠지 하는 서투른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非)규범성을 넘어 불확정적 형태들이 시선에 따라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새로운 조형미를 발산한다. 건축에서 기능은 모든 것에 앞서는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주 기능과 대립하게 된다. 롱샹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비규범적이고 비정형적인 형태가 공학적 측정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만 서 있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건축이다.

예측 불가능성이 가지는 조형적 다양성. 건축의 바깥 벽면을 따라가던 시선은 자연스레 내부의 구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정형화된 건축에서는 이미 외부에서 충분히 내부 구조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꼬르뷔지에의 롱샹교회는 한 면이 다른 면을 감추듯 바깥 역시 내부구조를 보여주지 않는다. 교회에 발을 딛고 들어서야만 비로소 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롱샹교회 내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공 빛을 철저히 제한하고 오로지 자연광으로만 교회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툼한 외벽의 두께와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으로 자리한 채광창. 창의 깊이는 빛의 밀도와 관계가 있다. 넓고 얕은 창이 받아들이는 빛은 건축물 내부 전체를 가득 채운다. 이럴 경우 빛이 건축구조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롱샹에서처럼 깊고 두터운 창이 집중력 있는 강한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면 아주 극적인 공간이 연출된다. 건축가는 지나친 연출을 통한 시선의 산만함을 피하기 위해 유리에 색을 입혀 자연광이 색을 투과해 공간에 녹아들도록 했다.

특이한 것은 천장이 벽면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천장과 벽면은 완전히 닿아 있지 않다. 따라서 그 사이가 띠처럼 비어 있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이러한 건축적 접근을 통해 재료의 원래적 성질은 증발해 버리고 심리적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전혀 다른 언어가 탄생한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곳곳에 마련된 작은 예배의 처소들이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빛이 새어들어 제단을 은은히 밝힌다. 제단들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예배자들과의 경계가 최소화 되어 있다. 종교적 권위 보다는 소통과 평등이 강조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르 꼬르뷔지에의 롱샹교회는 기능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는 건축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증명해 내면서 건축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훗날 얼마나 많은 건축가들이 꼬르뷔지에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위대한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