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층석탑과 백 년 된 향나무가 지키는 법주사의 영산전. 법주사는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에 위치해 있다.

법주사를 찾아가는 길은 후덥지근한 여름 홀로 적적하다. 인적 없는 들길을 개망초가 하얗게 무리지어 밝힐 뿐 모든 게 나른하다. 버려진 땅을 악착스럽게 지켜낸 숱한 고독들이 있어, 귀화식물이란 꼬리표가 결코 밉지 않은, 소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꽃이다.

청화산 남쪽자락에 있는 법주사는 은해사 말사로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심지왕사 또는 은점조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주석하고 일연이 총림을 세웠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 중기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자 1623년 보광명전을 중건하고, 15년 전 지금의 주지 육문 스님이 중창불사하였다.

넓은 주차장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당우들의 당당함 앞에서 잠시 당황스럽다. 불이문과도 같은 보광루를 통과하자 너른 마당 건너편에 위압적일 만큼 거대한 보광명전이 시선을 끈다. 1만여 평의 넓은 대지가 옛 사세를 짐작케 하지만 오랜 역사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 멀리 보광명전 앞 너른 계단을 스님 두 분이 내려오신다.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장엄한 경관과 달리 다소곳한 젊은 비구니 스님이 친절하게 절을 소개해 주신다. 법주사 주지는 전국 비구니 회장 육문 스님, 평생을 올곧게 살아오셨는지 젊은 스님의 얼굴에는 존경과 자긍심이 가득하다. 스님들이 하안거 수행 중이니 보광명전 우측 뒤로 보이는 청화선원 쪽은 피하기를 당부하신다.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보광명전은 선뜻 들어서기가 부담스럽다. 보광명전을 짓기 전에는 영산전이 주법당으로 쓰였다는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발길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영산전은 별채처럼 시선을 피해 다소곳하게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질곡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오층석탑과 내면을 키우며 살아가는 향나무가 영산전을 지킨다.

법당 안은 고색창연한 역사의 깊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단청이 벗겨진 천장과 오래된 마룻바닥이 주는 편안함,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도량이라 그런지 아늑하다. 석가모니 삼존불을 향해 천천히 백팔 배를 시작한다. 무심과 무심의 연속, 어떤 사념이나 청원도 없이 백팔 배를 끝내고, 텅 빈 마음으로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시간을 잊은 채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내 안에도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법당 같은 내면의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 석가모니 삼존불 뒤로 보이는 후불탱화에 유난히 마음이 끌린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영산불국, 사바세계의 불국토가 단순하면서도 차분한 색감으로 표현되어 있다. 법당을 독차지하고 앉아 국보도 보물도 아닌 후불탱화를 감상하는 이 시간이 좋다.

법당을 나서는데 청화선원 앞마당에 스님들이 줄을 서서 돌고 계신다. 수행을 하다 잠시 포행 중인 듯하다. 가슴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나는 물푸레나무를 떠올린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하여 이름 붙여진 나무다. 가까이 있으면 나도 푸르게 물이 들 것만 같다. 나는 무슨 의식을 치르듯 포행이 끝날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주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모든 욕망의 고리를 끊고 맑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머무는 공간과 대화, 고독을 껴안고 행해졌을 수많은 날들의 기도를 떠올리며 나를 돌아본다. 나의 한 주는 늘 그렇듯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보광명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잠긴 문고리를 풀고 법당으로 들어서는데 커다란 괘불함이 아미타삼존불보다 먼저 반긴다. 짐작컨대 보물 제 2005호로 지정된 법주사 괘불도가 보관되어 있는 함이리라. 1714년 숙종 40년 아홉 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한 대형괘불이다. 찬란했을 한 때의 영광이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넓은 법당에는 조금 전까지 기도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반으로 접혀진 좌복을 펴자 누군가 외우다가 만 경(經)이 염불이 되어 흘러나온다. 아미타삼존불을 향해 삼배를 하고 나서는데 하얀 피부에 가녀린 체구의 스님 한 분이 다리를 절며 들어오신다. 봉침을 맞았다는 발이 슬프도록 희다. 상냥한 말투와 미소조차 애잔해진다. 독백처럼 걷는 스님의 길이 마냥 꽃그늘일 수만은 없으리. 누군가와 함께 걷는 내 길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육체적인 아픔에서 벗어나 수행에 전념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둡지 않은 그림자 하나 남겨두고 법당을 빠져 나왔다. 너무 웅장해서 정이 가지 않던 첫 느낌의 보광명전이 제법 든든해 보인다. 오늘 마주친 스님들의 위태롭지 않은 시간들이 법주사의 넉넉한 미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절을 나서는 내 발걸음에도 정갈한 기운이 실린다.

국내에서 가장 큰 왕맷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볍게 찾아갔던 법주사, 맷돌 위에 소탈한 웃음을 띠고 앉아 있는 동자승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곳에는 사막의 낙타처럼 묵묵히, 힘들고 고단한 외길을 고집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푸른 기도가 사시사철 자라고 있다. 삼천 년만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 같은, 그 깨달음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