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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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중고교 테니스 대회를 관람한 적이 있다. 경기에서 패배한 선수가 경기장을 나가니까 코치가 그 선수를 데리고 구석진 곳을 갔다. 그리고 그 선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시합에서 졌다는 것”이다. 그 선수는 표정 없이 일상 생활인듯 얻어 맞고 있었다. 과연 그 선수가 잘못한 게 무엇일까?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했는데 코치가 시키는 대로 안했다는 것이 이유일텐데, 코치가 시키는대로 다 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한다면 결국 로봇 같은 선수가 될 것이다.

필자는 당시 “체벌과 욕설, 사라져야 한다”라는 칼럼을 쓰면서 한국 체육계에서 체벌과 욕설이 사라지길 바랐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절망적이다. 철인 3종경기에서 어린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선배들의 욕설을 매일 들어야 했고 코치, 팀 닥터라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얻어 맞으면서 훈련을 하면서 여러차례 관련단체에 하소연을 했지만 무산되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20년전이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때려야 성적이 난다”, “맞아야 메달을 딴다”는 무식한 방식으로 인격을 모독하는 체육계의 훈련방식이 계속 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겐 체벌과 욕설이 운동 선수에게 효과적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한국의 코치들은 여전히 초등학교 및 중고교 선수들을 때리거나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 실제로 주니어 시절 좋은 성적을 내었던 선수들의 경우 많이 맞으면서 훈련한 것이 사실이다. 10대 선수들은 자기 제어 능력이 부족한 나이이기 때문에 일단 체벌을 가하면 통제가 가능하고 훈련의 효과가 잠시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맞은 선수는 일단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할 것이다. 그리고 코치 감독의 눈치를 보고 행동하고 시합에 나가서 일단 이기기 위해 애쓸 것이다. 지면 맞으니까…. 한 선수는 “맞지 않기 위해 연습하다 보니 이렇게 수동적인 로봇 같은 선수가 되었다”고 술회한다.

맞아서 성장한 선수는 운동을 하는 기계로 전락한다. 창의적인 게임 운영을 하기도 힘들다. 기가 죽은 선수는 창의력과 개성이 요구되는 운동종목에서 성장하기 힘들다. 세계 1위까지 올랐던 안드레 아가시라는 테니스 선수는 재학 시절에 공부 보다는 패션에 관심이 많고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이런 아가시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면 아마도 학교에서 엄청 두들겨 맞으면서 운동을 헀을 것이고 결국 창의력이 부족한 로봇형의 선수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수는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모두 예상하고 대처할 수는 없기에 어려서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이 길러져야 한다. 그 능력은 욕설과 때리고 맞는 이런 환경에서 육성될 수 없다. 일부 단체로 한정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체육계는 환골탈퇴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이제 체육계는 변해야 한다. 체육계의 변화만이 22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등진 한 유망주에게 진정한 용서를 비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