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스님들이 북을 치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 불국사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던 산과 들과 논이 알록달록 수채화처럼 예쁘게 색칠해 놓은 듯 했다. 푸르름에 반해 한동안 넋 놓고 있다 보니 불국사 주차장이었다. 오래간만에 달려간 불국사는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나와 내 친구들을 아낌없이 품어줬다. 좀 전까지 세차게 불던 바람도 갑자기 멈추었고, 접시꽃은 수줍은듯 분홍빛 웃음으로 반겼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의 단골장소였던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그날의 기억도 되살려주었다.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북소리가 텅 빈 불국사에 울려 펴졌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우리들만 남아서 오후의 홍차를 지인이 싸온 쑥떡과 함께 나눠마시던 참이었다. 손에 들었던 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소떼들처럼 부지런히 뛰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친구는 그 순간 우사인 볼트가 되었고, 그렇게 빨리 뛰어가는 친구를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내달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배를 움켜잡고 달렸다.

스님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북을 두드렸다. 서너 분이 1분씩 돌아가며 치는 북소리에 내 가슴도 쿵쾅거렸고, 스님마다 약간의 리듬이 달라서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뭐라고 표현 못할 정도의 그 느낌. 북소리가 끝나자 종소리가 울리고 종소리에 화답하듯 목어와 운판이 몸을 떨었다. 그 소리들은 나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우리를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날은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우울했던 내가 빨강머리 앤 같은 S양, 빨간 망토 차차 같은 J양, 그리고 환한 웃음 짓는 C양과 함께한 소풍은 행복하고 또 행복한 하루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적 거리는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

/포항시 북구 해맞이 그린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