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작가 조해일이 세상을 떠났다. 뉴스에는 났다지만 돌아볼 사람 별로 없는 조용한 타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해일의 대표작 가운데 ‘겨울여자’라는 게 있어,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쯤 일이었을 텐데, 거기 나오는 음악 ‘노예들의 합창’ 때문에 두고두고 인상에 남았다.

세대를 따져 보면 작가의 위치가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조해일은 1941년생, 그러니까 필자가 이른바 1940년 전후 출생자 그룹으로 분류하는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이 그룹에 이청준, 이문구, 현기영, 김원일, 조정래,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분도 있다.

조해일은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했는데, 이 점에서는 신경에서 출생한 황석영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둘 다 해방 전에 만주에서 출생하여 해방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해방과 6.25 전쟁을 겪은 한국 현실에 적응하며 성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조해일은 지금껏 대중적인 작가, 상업적인 작가라는 말을 굴레처럼 쓰고 있는데, 작품들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작가라는 사람들 가운데 대중적, 상업적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런 ‘순수’ 작가는 안 팔리는 작가거나 실력 없는 작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정말 ‘순수’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한 작가 정신의 소유자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조선작, 조해일, 최인호 같은 작가들에 덧씌워진 이 ‘금고아’를 시험해 볼 생각인데, 이미 대학원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해일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필자는 그의 몇몇 대표작들을 다시 읽는다. ‘뿔’이며, ‘멘드롱 따또’며, ‘아메리카’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다들 수준 높은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서도 ‘아메리카’는 문제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들이 아파트 붕괴로 몰살당하는 아픔을 뒤로 하고 제대 후의 삶을 당숙에게 의탁하러 간다. 당숙이 미군 상대 클럽을 운영하는 곳의 이름은 ‘ㄷ’ 시인데, 이니셜을 살려 말하면 실제의 ‘동두천’쯤 된다.

미군이 삶의 ‘원천’이 되어 있는 이곳에서 주인공 청년은 ‘양공주’들의 ‘별난’ 세상을 체험한다. 이 세계에 대한 풍부하고도 현실감 있는 묘사는 이 작가의 작가적 수업 과정이 탄탄했음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작가는 가고 작품은 남는다. 필자 또한 그 작가의 한 사람임을 생각하며, 과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였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