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대수필가
윤영대수필가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면 편리한 점이 많다. 매달 우편함에 꽂혀있는 관리비 명세서를 가져와서는 거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모아 두지만 관리비는 자동이체되어서 이제는 거의 무관심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나대로의 가계부를 정리하며 생활에너지 사용에 대한 부분만 살펴보고 있다.

가계부에는 아파트관리비 부분이 있고 그 항목에는 전기, 수도, 가스 및 통신료 등이 있다. 우리 집의 생활에너지 사용 추이를 알아보겠다는 것인데 전기는 전력량(KWh)과 요금, 수도는 사용량(t)과 요금, 가스료와 통신료는 금액만 적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 수도료,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만 사용하는 물값을 보니 계절에 따라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1년 내내 월 1만원 내외이다. 물론 부부 둘이 사는 생활이라 해도 물값 1만원은 너무 싸다고 생각된다. 고급 커피 두 잔 값도 안 된다. 그 물값으로 한 달 동안 먹고 설거지하고 세수하고 목욕하고 화장실 쓰고 세탁도 하고 베란다 청소에다 화분까지 물 주고…, 사용량은 10톤 내외라니 그야말로 ‘물값’이다. 그렇다고 마구 풍족하게 쓰자는 것은 아니다. 생수병 1ℓ에 500원 정도이니, 만약 생수로만 생활한다면 10톤은 1ℓ의 만 배, 돈으로 500만 원… 엄청난 금액이다. 생수 물값이 금값이다.

우리나라 수돗물 급수현황을 보면 지자체들의 수원지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포항시는 ‘맑은물 사업본부’에서 하루 약 230만 톤을 생산하고 1인당 450~500ℓ를 소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1인당 평균 물 사용량은 약 280ℓ로 유럽국가들의 2배 수준이라고 하고, 이 중 가정용이 약 180ℓ라고 하니 포항 시민들은 생각보다 많이 쓰는 모양이다. 그리고 요금체제는 가정용, 일반용, 대중탕용 등으로 나누지만 가정용은 20톤까지는 톤당 585원이고 이후에는 누진세가 적용된다고 한다. 우리 집의 경우 계산을 해보니 포항 평균의 반 정도밖에 쓰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해보니 먹고 마시는 식수로서의 양은 얼마 되지 않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데 많이 쓰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장실 수세식 변기의 경우를 보면 하루 대소변 5회를 이용한다고 봤을 때 1회 10ℓ 정도라면 1일 50ℓ, 즉 1일 사용량의 약 1/4, 참 많이 쓴다. ‘돈을 물 쓰듯이 한다.’ 더니 화장실 대소변처리에 수도요금의 1/4을 쓴다는 거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라 물 맑고 깨끗하여 어릴 적만 해도 집에 깊은 샘이 있어 두레박으로 퍼서 마셨고, 산과 들에 흐르는 물도 그냥 마셨다. 수돗물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축복을 받은 나라다. 외국에 나가 보면 수돗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나라도 많다. 그러나 중금속 검출과 공업단지의 페놀 유출 등 환경 오염사건으로 인해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수돗물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인지 정수기를 갖추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생수의 국내판매가 공식 허용되기 시작한 90년대 초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계곡의 깨끗한 샘물을 찾아다니며 마셨다. 나도 산행을 겸해서 경주 토함산, 흥해 천곡사, 안강 사방약수까지 먼 길을 큰 물통을 들고 물을 뜨러 갔었다. 물론 공짜였다.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얘기하면서 “누가 물을 돈 주고 사 먹냐?”하며 웃었는데, 요즈음은 계곡물도 팔고 바닷물도 판다. 생수 개발이 보편화 되어 암반수, 심층수 등 종류도 300여 종이 넘고 외국산 생수도 들어와 있다. 이제 물까지 수입해서 먹는 판이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국제원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하락했다고 하니 1ℓ 150원 정도이고 세금 등을 제외한 순수 휘발유 가격은 1ℓ 520원 정도로 생수 값과 거의 같다. 물론 수돗물값에 비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중동지방에서는 물값이 원유가보다 엄청 비싸다는 말을 듣고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오는 대형 유조선의 일부를 수조로 개조해서 중동에 빈 배로 갈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맑은 물을 싣고가서 팔면 비싼 원유값 일부라도 보충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라고….

우리나라는 알려진 것과 달리 ‘물부족 국가’는 아니라고 하지만 물은 언제나 아껴 써야 한다. 목욕탕에서 물을 줄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짜증이 난다. “풍족하게 쓰시되 낭비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참 좋다. 아무리 물값이 싸다 해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