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이 없어야
사념이 없어야
  • 등록일 2020.05.27 20:07
  • 게재일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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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음악과 시를 전송해주는 지인이 있어요. 연세도 많은 분이 어쩜 그리 한결 같으신지. 처음엔 송구한 맘에 의무적으로 클릭을 했지만, 요즘은 늦잠을 완벽히 깨우는 마법의 음료수로 삼고 있어요. 눈을 뜨면 습관처럼 찾곤 하지요. 누군가의 수고로 제 하루의 시작이 신선합니다.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겨울산’이 배달되었어요.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몸은 부스스한데 정신이 버쩍 듭니다. 짧은 시지만 통렬하게 뜨끔합니다. 칼럼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시인의 일갈처럼 인간은 사색이 많아 괴로운 기회주의자들이죠. 그 출발점은 욕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범한 우리들에게 욕망 없는 만족이 있기나 할까요? 욕망은 인간의 숙명적 굴레예요.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욕망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에요. 거기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사색’이 문제인 거지요. 사념덩어리는 욕망하는 행위의 필수불가결한 부산물이에요. 그것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욕망을 좀 더 건전하게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념, 그러니까 어떤 판단이나 계산 같은 것들은 욕망이 누는 똥이에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수반하지요. 내가 기회주의자일 때 파생된 잡념들이니까요. 사색만 버릴 수 있다면 욕망 자체는 부끄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념이 많다는 건 유리에 갇힌 파도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휘몰아치고 넘실대지만 자연스러운 게 아니니 제 안을 넘지 못합니다. 신선하지도 그렇다고 파란을 일으키지 못하지요. 끝내 해안선에 닿지 못하고 번뇌의 유리통만 되풀이해서 철썩일 뿐이지요.

순수하니 몰염치해도 사랑스럽고 간절하니 맹렬해져도 용서가 되는 게 욕망이에요. 나아가 성취하면 오만해지는 것도 욕망의 속성이에요. 군자가 못 되는 대다수의 우리는 그렇게 욕망하면서 살아가지요. 욕망의 인간적인 면모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한 바퀴만 돌리면 다음과 같은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완벽하게 성숙하면 겸허해지는 것 또한 욕망이라는 것에요. 성숙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 사색을 버리는 일이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지요.

쓸데없는 사색을 부려 놓기 위해 길을 나섰어요. 외곽지에서 폐차장을 만났습니다. 층층이 쌓인 껍데기들이 허공 속에 누워 있습니다. 차를 세우고 한 컷을 얻습니다. 탐욕의 끝자락이 저 쨍한 하늘자리에 걸려 있습니다. 한 때 도로를 누비던 부질없었던 영광이 낡고 부스러진 사념덩어리로 켜켜이 쟁여져 있습니다. 위태로운 사색의 끝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마음의 짐을 덜려다 더한 마음의 짐이 생깁니다. 사특한 욕망이야말로 끝내 허망의 탑 쌓기와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홀로쟁이’입니다. 어느 프로파일러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에게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그래서 매체로는 동물의 왕국만 본다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생각에 동조할 때가 있습니다. 쌉싸름한 희망보다 달콤한 비관이 가슴을 지배하는 그런 날이 가끔 있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외롭고 누군가는 고독을 즐긴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움과 고독 구별법, 사전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저만의 풀이를 달아봅니다. 감성적 에너지로 자신을 갉으면 외로움이에요. 한마디로 괴롭지요. 그 자리에 창조적 에너지를 쏟으면 고독이 되는 거지요. 견딜만한 희열이지요. 어차피 무에서 시작하는 유는 없어요. 있는 유를 파괴한 찌꺼기가 신선한 창조물이 되는 거지요. 완벽에서 새로움이 생길 리 없잖아요. 새로움이야말로 기존의 새로웠음을 밟고 일어나는 뭉근한 혁명이니까요.

지인의 전화기 퍼스나콘에서 이런 뉘앙스의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징징대거나 불평하지 말아요. 열심히 나아가요.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요. 나는 나예요. 이유를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가만 읽어 내리면서 욕망이나 고독은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거니까요.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여전히 혼자 또는 소수를 강권하는 나날이에요. 코로나가 친숙한 친구가 되어가는 동안 건강한 욕망을 꿈꿔도 좋을 것 같아요. 외로움을 고독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연습도 괜찮구요. 주변을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게 결코 견디지 못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만 자문자답해봅니다. 외로운가요? 욕망해서 그래요. 하지만 괜찮아요. 욕망은 나쁜 게 아니니까요. 다만 명심하세요. 욕망의 똥덩어리인 사념을 버려야 건강한 고독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번드르르하거나 번잡함 뒤의 공허한 잔해. 삶의 실체적 진실이 자명할수록 우리는 잘 견뎌내야 하니까요. 더한 사색이 쌓이기 전, 빨리 집으로 가야겠어요.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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