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항시가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는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 경쟁에서 탈락하자 지역 내에서 불만의 소리가 확산되고 있지만 현재 시가 보유하고 있는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기반으로 하는 고부가가치형 강소기업 육성으로 진정한 지역 경제발전을 이끄는데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포항시 제4대 방사광가속기 전경.

최근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둘러싸고 전국이 들썩였다. 물론 포항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예선 탈락에 그쳤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선정조건 자체부터 불리’ 등 탈락에 따른 자조적인 탄식과 더불어 과학자와 정치가의 시각차를 다루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낙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굳이 포항이 우리나라 모든 과학 분야의 기초연구 기반인 가속기라는 하드웨어를 하나 더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들어서더라도 여전히 포항은 3세대 원형(방사광)과 4세대 선형(XFEL)가속기를 보유한 국내 최고의 가속기 집적지다. 경주의 양성자가속기까지 가세한다면 포항 경주 지역은 세계적인 가속기클러스터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포항시를 비롯해 지역 각계가 이번 차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에 정성을 쏟은 것은 국가과학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이 가속기 건설에 따른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라는 ‘경제’에 더 주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속기 건설에 따른 경제효과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측면의 경제효과가 있다. 우선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장치의 제작과 설계, 기술 등을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매출이 바로 공급 측면에서 파급되는 경제효과다. 그리고 수요측면에서는 바이오, 의료, 건설, 생활, 철강, 소재금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형에서 가속하며 튀어나오는 빛(방사광)이건, 직선에서 가속하여 X선 자유전자 레이저(XFEL) 빔이건 가속기를 가동하여 나오는 빛의 투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여 산업에 접합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효과가 있다. 가속기 건설의 경제효과가 여타 다른 사업에 비해 크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공급 또는 수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지만 가속기는 양 측면에서 경제효과가 광범위하게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속기가 국가기초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은 보너스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는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전혀 부풀려진 수치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포항이 심혈을 기울여 유치하여 건설, 가동하고 있는 3세대 원형가속기와 4세대 선형가속기를 통해 과연 당시 기대만큼 어느 정도 경제효과를 거두었을지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대규모 국책건설사업의 유치에 공을 들이지만 기간시설의 건설과정에서 고스란히 경제효과를 지역이 누리려면 반드시 전제가 뒤따른다. 일단 2016년 가동을 시작한 축구장 50배 면적에 국내에서 길이가 가장 긴 1.1킬로미터에 이르는 단층 건물로 만들어진 이른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살펴보자. 과연 그렇게 넓은 면적과 수 백억원의 자금을 제공한 포항에서 지역 건설업체나 철강업체가 가속기 건설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지역산 철강재가 어느 정도 투입되었을까. 아마도 생각만큼 그 비율은 높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경 필자는 ‘포항의 가속기클러스터사업 추진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이 가속기 건설 당시 주요 장치를 신규개발하고 국산화하였던 업체들이 손 놓고 있지 않도록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여 소형화, 국산화, 고기능화를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의 주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가속기 대부분이 수입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제공 가능한 의료용 가속기의 국산화 추진 등을 통해 공급 측면에서의 경제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가속기 생태계를 조성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이 기업들이 성장해왔다면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건설되더라도 최신 기술력과 가속기 건설 경험을 지닌 이들이 당연히 참여하게 될 것이고, 포항에 부가가치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다.

수요측면이야말로 가장 기대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항의 가속기를 이용하여 보다 가시적으로 지역 내에 혁신적인 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창업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특허와 연구성과는 적지 않았다. 수천 편에 이르는 연구논문 중에는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 있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가속기가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포항경제를 윤택하게 할 신제품의 개발과 창업이 이루어져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은 아직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어떠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려 하였을 때 외형적인 경제효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총 건설금액이 아무리 크더라도 지역업체가 참여하지 못하면 그저 공사하는 동안 먼지만 날아오고 지역의 아름다운 산만 없어지고 환경만 훼손시킬 뿐이다. 진정한 경제효과는 사업비의 다과에 있지 않다. 사업 시행에 과연 우리 지역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역량이 부족하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역량을 키우거나 역량이 되는 업체를 조건부로 끌어들인 다음에 유치하는 꼼수도 필요하다. 지역경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국책사업은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도 있다. 이번 가속기 유치문제도 비슷한 사례다. 주요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동참하여 자괴감에 빠져 마치 포항이 버려진 양 침울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다시 한번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포항이 이바지하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다른 지역에 양보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오히려 이미 포항은 아름다운 강산을 희생하면서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통해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넘칠 만큼 이바지해 왔다고 자부해도 좋다. 단지 그것을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한 기업들 가운데 포항에 소재한 기업이 많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여러 가속기를 한곳에 모아두면 분명 시너지효과는 있다. 연구원들이 멀리까지 발품을 팔 필요도 없고, 협업하는데도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가속기 기반 연구가 24시간 가속기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지역에 있더라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온라인 화상회의도 있어 연구 활동에 제약은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가속기 기반 연구가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의 창업으로 연결될 것인지다. 또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을 모델로 국내외에서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어 가속기 기반의 신약, 신기술, 신제품을 연구 개발할 것인지다. 이들이 포항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솔직히 국가 기초과학기술의 진보는 중요하나 굳이 포항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만이다. 가속기가 어디에 건설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속기 기반의 연구 결과가 얼마나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것인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미 포항이 보유하고 있는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기반으로 지역의 청년, 과학자, 연구원들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이 포항에서 창업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혁신형, 기술형, 고부가가치형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