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 전유물이 아닌 그림 보통 사람들도 감동 누려야”
“특권층 전유물이 아닌 그림 보통 사람들도 감동 누려야”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5.06 19:39
  • 게재일 2020.0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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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의 겨울’을 사랑하는 화가 박승태

51년 인생에서 40년 넘는 시간을 한 가지에 몰두하며 한 우물을 파왔다면 그 신념의 단단함이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푸른 바다와 짙푸른 녹음, 붉은 일출과 어두운 달그림자가 공존하는 울릉도에서 태어난 소년은 철이 들기 전부터 그림이 좋았다. 물감과 붓만 있다면 어디서건 그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미술은 소년의 ‘운명’ 혹은 ‘삶 자체’가 됐다.

흘러온 반세기 동안 울릉도, 포항, 대구, 다시 포항으로 사는 곳은 바뀌었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화가 박승태 씨 이야기다.
 

그림솜씨 뛰어난 첫째·셋째형 영향

미술교사 꿈 꿔오다 서양화 전공

모교 계명대 인근서 미술학원 운영하다

30대초 포항에 정착해 창작활동 해 와

3년전 원도심 ‘꿈틀로’에 둥지 틀며

동네주민 등 100여 명에 초상화 선물도

“화가의 겉멋은 그림서 멀어지게 할 뿐

예술가와 일반인들 사이 거리 좁혀야”

그림을 그리며, 그림이 가져다주는 매혹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는 박 화백은 지천명(知天命)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학원에서 미술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수십 년간 꾸준히 내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꿈의 절반은 이미 이룬 것 아닌가”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 박승태 씨를 포항 중앙동 꿈틀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자신의 젊음과 에너지 모두를 그림에 바치며 살아온 세월이 후회되지는 않는지, 앞으로는 어떤 그림으로 사람들과 만나고자 하는지, 지향하는 예술세계는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아래는 그 물음에 관한 박 화백의 솔직한 답변이다.



-먼저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1969년 아버지가 교사로 근무하던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살다가 포항으로 나온 건 아홉 살 때다. 이후 중·고교는 포항에서 마쳤고,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언제이고, 미술에 매료된 계기는.

△오형제인데, 큰형과 셋째 형이 모두 그림을 잘 그렸다. 집안 분위기가 그랬으니 덩달아 나도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나보다 더 재능 있던 형들은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결국 내가 화가가 됐다. 인생이 참 재밌다.(웃음)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대회에 나가 상을 받곤 했다. 알게 모르게 유년을 보낸 울릉도의 자연 경관이 미술에 대한 열망의 한 부분을 키워준 듯하다. 어릴 때부터 꿈이 미술교사였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림 그리며 살고 싶었다. 그 꿈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중·고교 시절 미술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지.

△중학교와 고등학교 땐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시절 미술을 가르친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정말이지 빼어난 실력과 재능을 갖춘 친구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내가 질투를 느낄 정도로 그림 실력이 탁월한 친구였다. 걔가 죽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친구 집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직은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시기에 접한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오래 슬퍼했다. 당시엔 미술학원과 집만을 오갔는데, 그림 그리는 걸 반가워하지 않던 아버지가 그즈음 미술대학에 입학하는 걸 허락했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의 모습과 작품이 떠오른다.



-군대에서도 미술 전공한 것이 도움이 됐는가.

△예비군을 관리하는 부대에 있었다. 인사·행정병이었는데, 부대 내 현수막 제작과 차트 작업 등을 도맡아 했다. 미술을 공부한 덕택에 군대 생활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모교인 계명대 인근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대학 졸업 직후엔 경제적으로 어려워 앞산에서 사람들 초상화도 그렸다. 용돈을 벌어 쓰기 위한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다. 학원 강사와 운영자로 일하던 시절엔 보람도 있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이른바 ‘명문 미술대학’에 많이 들어갔다. 개인 사정으로 학원을 정리하고 포항으로 돌아왔던 게 30대 초반 때다. 이후엔 쭉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다.




-당신의 작업 스타일을 소개한다면.

△풍경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좋아하고 즐겨 그린다. 나는 자연이 가진 매력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작품 중엔 풍경화가 많다. 지금은 물론 학생 때도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해 배낭 메고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산을 포함한 자연이 그 자체로 좋다. 그 안에 있으면 숨 쉬는 것부터가 편하다.

 

목적이나 수단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궁핍과 외로움을 견디며 자기 자신과 오랜 시간 싸우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작업하는 성실함 역시 필요하다.

-앞서 질문과 이어지는 것인데, 여행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스스로 만족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매일, 매시간 모습을 달리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꽃이 필 때와 질 때의 아름다움이 다르고, 해가 뜰 때와 저물 때의 색감이 다르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그걸 느낄 방법이 없다. 경상도, 서울,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가리지 않고 여행을 다녔다. 가본 여행지 중 가장 멋진 곳을 꼽는다면 적막함과 오밀조밀함이 매력적인 겨울철 보경사 청아골과 가을 무렵의 청송 주왕산이다.



-좋아했거나 영향을 받은 화가가 있는지.

△폴 세잔느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그린 작품들이 매력적이다. 클로드 모네의 색채도 좋아한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는 요즘엔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됐다. 그들의 그림은 재론의 여지없이 감동적이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경제적, 심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텐데.

△금전적인 압박도 있고…. 학원을 운영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힘들었다. 해외여행도 그래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도 그림의 소재가 될 좋은 경관의 여행지가 많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자연 속에서 내 그림을 완성시켜 나갈 생각이다. 전라도의 갯벌과 어릴 때 떠나와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울릉도의 풍광을 소재로 한 작품도 해보고 싶다.



-포항 원도심 활성화와 문화예술인 창작 지원을 위해 조성된 ‘꿈틀로’에 작업실이 있다.

△3년 전쯤 들어왔다. 30만 원 정도의 작업실 임대료를 지원받고 있으니 크건 작건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려면 예술가들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꿈틀로’에서 활동하며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동네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내가 지원받는 임대료도 결국은 시민들의 세금이 아닌가. 그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2018년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때는 시민들에게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초상화를 그려 선물한 분들이 대략 백 명쯤 된다.



-당신의 전시회를 찾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개인전을 열 번 열었다. 지난번 전시 때는 지진 탓에 힘들었는데, 이번엔 코로나19가 말썽이다. 전시회 운이 없다. 올해 여는 전시의 핵심은 ‘봄, 여름, 가을, 겨울-반복의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 흐름 속에서도 자연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바로 그 ‘변함’과 ‘변하지 않음’에 주목했으면 한다. 내 경우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림이 밝아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밝음’도 잘 살펴줬으면 좋겠다.(웃음)



-그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삶 자체다. 내게 자연은 사랑이다. 나는 내가 가진 재주로 사랑을 느끼는 대상을 화폭에 담는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거창한 의미 부여나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목적이나 수단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궁핍과 외로움을 견디며 자기 자신과 오랜 시간 싸우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작업하는 성실함 역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화가를 포함한 예술가와 일반인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가의 겉멋은 사람들을 그림에서 멀어지게 한다. 몇몇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단어와 문장으로 쓰인 미술평론도 지양돼야 할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누리는 예술이 바람직할까? 그림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림이 주는 감동을 누릴 자격이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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