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세상이 시끄럽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전염병이 창궐해서 난리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 당리당략을 위해 불꽃 튀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미세먼지 만큼이나 소음이 가득한 세상이다. 온갖 인공의 소리들이 자연의 소리를 삼켜버린다.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나오는 굉음과 자동차의 엔진소리,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음향 기기들이 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청신경을 자극하는 세상이다.

인공의 소음에 쫓겨 고요가 사라졌다. 옛날에는 사람의 마을에도 고요가 함께 살았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들려도 놀라서 달아나지는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고요가 아니라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리는 게 고요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낙엽 지는 소리 댓잎에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 고요다. 방음장치로 막힌 무성(無聲)의 공간에선 고요도 살지 못한다. 이제는 고요를 만나려면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나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아무나 쉽게 고요를 만나지는 못한다. 고요가 사람을 반기지 않는데다 고요를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요의 존재를 의식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산골 외딴집에서 태어나서 고요 속에 살았던 나 역시 그 때는 고요를 의식하지 못했다. 매순간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 고요 속에서도 고요를 느끼지 못했다.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힐 때야 맑은 공기가 절실하듯 문명의 온갖 소리들이 유해한 소음이란 걸 깨닫고서야 고요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처럼 고요도 소중한 자연환경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이 유행할 정도로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득이 되는 현실이다. 방송매체의 오락프로그램도 정신없이 찧고 까불어야 관심을 끌고 시청률이 오른다고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미 소음에 중독이 된 사람들은 고요가 너무 낯설거나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금단현상 같은 거랄까, 늘 도시의 소음에 절어 살던 사람을 갑자기 한적한 산골에 데려다 놓으면 아마도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담배나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이 된다는 건 물론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물이나 공기의 오염이 몸의 건강을 해치는 공해이듯 소음은 정신의 건강을 해치는 공해다. 소음 가득한 세상에선 마음도 소란하고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은 명상(冥想)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원래는 구도자들의 수련법이었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심신의 긴장을 풀고 평온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전국 130여 산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고, 도시에는 ‘명상센터’ 같은 곳도 여럿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따로 ‘고요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깊은 산중에 시설을 지어 2박3일 동안이라도 일체의 말을 하지 않고 명상과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소리에만 마음과 귀를 열어 놓는다면, 좁은 일상과 굳은 관념에 갇혀있던 의식이 드넓은 우주로 확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