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수 신부 <br>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
정석수 신부
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

바람이 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나무는 초록빛을 더 뿜어내고 있다.

뜰의 매화나무는 이 찬바람 속에서도 꽃망울을 키우고 있다. 입춘 오기전 한참 전 어느 겨울날 나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다. 많은 나무들은 죽은 듯이 있는데, 매화만 홀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날이 푸른빛을 보여주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땅 위에 드러난 가지와 줄기의 무게와 땅속에 들어 있는 뿌리의 생체량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겨울, 매화나무의 꽃망울만큼 땅속의 뿌리는 그만큼 더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긴긴 겨울은 나무에게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요 휴식 중에 열심히 준비하는 때라고 여겨진다.

몇 해 전 이곳으로 왔을 때, 큰 화분에 소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그 다음 해 화분 밖으로 뿌리들이 나와 있는 것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에 땅에 옮겨 심었다. 그 겨울에도 그 나무는 푸른 솔잎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분 밖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오는 뿌리의 힘은 이제 땅속에서 자리 잡고 한 해에 한 마디씩 하늘로 쑥쑥 줄기와 가지를 올리고 있었다. 소나무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너는 내면에 깊이 파고들어 가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깊이 파고드는 노력이 있을 때, 변화의 힘이 드러나리라.

얼마전 후배 신부님의 서약식에 참여하였다. 서약 청원서를 들으며 외견상 본 귀공자의 모습과 달리 깊은 울림을 주어서 놀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박수를 보냈다. “성소의 시작이 가난이었습니다”라는 첫 문장에서 엄동설한에 꽃망울을 키우는 매화나무를 연상하게 되었다. “나눔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삶에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즉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사랑은 누군가가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단순하기에 더 깊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의 삶 주변에 있는 그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삶에는 그 사랑의 열매인 기쁨과 평화와 자비가 함께 따르게 되리라. 한 사람의 호의는 상호유대를 촉진하는 따뜻한 관계를 촉진하게 된다. 청원을 하는 신부님을 통하여 선을 행하려는 몸에 밴 확고한 마음가짐인 덕을 보게 된다.

추웠던 겨울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봄을 시작하는 출발점, 쉼표의 겨울. 스스로 휴식을 통해 신체적, 심리적 에너지를 회복하고 내 안에 있는 건강한 나에게 물을 주어 보이지 않는 뿌리에 활력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꽃망울에서 매실을 거두어 들이듯 삶에 결실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