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에서 자유 느껴 서사의 힘 무엇보다 중요”
“이야기 속에서 자유 느껴 서사의 힘 무엇보다 중요”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2.19 20:13
  • 게재일 2020.0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밀한 가족사로 소설 ‘남중’ 완성시킨 작가 하응백

“낚시할 땐 사색하는 뇌를 쉬게 한다”는 작가 하응백이 싱긋이 웃고 있다.
“낚시할 땐 사색하는 뇌를 쉬게 한다”는 작가 하응백이 싱긋이 웃고 있다.

문학평론가, 출판사 휴먼&북스 대표, 교수, 한국 문단 최고 낚시꾼, 국악 연구자, 인터넷신문 문화 에디터…. 작가 하응백(59)은 활동 영역이 누구보다 넓은 사람이다.

기자가 20년 가까이 지켜본 하응백은 ‘할 말 외에는 침묵을 지키는 과묵한 경상도 사내’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말 ‘남중(南中)’이란 제목의 책을 써 ‘소설가’라는 또 다른 이름표 하나를 더 얻었다. 모두가 말하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언의 통로를 찾지 못하거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어 세상에 내놓기를 포기했던 ‘내 자신의 이야기’를 3부작 연작소설로 만들어낸 것이다.

평생을 자유로운 ‘바람’처럼 살아온 아버지, 한국 현대사의 쓰라린 비극을 온몸으로 앓아온 어머니,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삶까지를 숨김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하응백.

지난 주말 하응백에게 만남을 청했다. ‘시간을 뺏기고 손해를 보더라도 점잖은 표정을 잃지 않는 사람’인 그가 부탁을 거절할 리 없었다. 아래는 그날 오고간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문학평론가·출판사 대표 등 다양한 활동 중
고교 때부터 쓰려고 한 이야기 ‘남중’에 담아
“어머니 돌아가시자 늦춰선 안되겠다 생각”

“사색하는 뇌 쉬게 하는 유일한 놀이는 낚시”
자타공인 ‘문단의 낚시광’ 별칭 아깝지 않아

 

최근 연작 소설 ‘남중’을 출간해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작가 하응백.
최근 연작 소설 ‘남중’을 출간해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작가 하응백.

-대구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대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다. 그 후 서울에서 40년을 살았지만 내 정체성은 대구 사람이라는 거다. 불볕더위에 서울 사람들이 난리를 치면 대구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이까짓 더위야 대프리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대구에서의 추억은 차근차근 육화돼 앞으로 작품으로 나올 것 같다. 소설 ‘남중’의 주 무대도 대구 서문시장, 대명동, 봉덕동, 달성동이다.



-대건고등학교 문예반이었다. 문학의 길로 들어선 이유가 있는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 때 선배들이 서클 가입을 권유했을 때 내가 갈 곳은 문예반밖에 없었다. 문학, 특히 소설은 개인사를 객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의 가족사적인 핸디캡은 소설에서는 썩 훌륭한 소재가 된다. 그런 것을 이론적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과 같은 이야기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내가 갈 곳은 문학밖에 없었다.



-대구에서 보낸 문학소년 시절은 어땠나.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도광의 시인이다. 수업 때 문학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와 같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이야기를 주로 했다. 서정주의 시를 읊어주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손창섭과 김승옥의 소설에 매료되기도 했다.



-1980년대 경희대 국문과를 다녔다. 쟁쟁한 선후배와 동기들이 있었을 텐데, 기억에 남는 동창은.

△박덕규, 류시화, 김형경, 하재봉, 이문재, 이혜경 등 좋은 선배들이 많았다. 동기 중에선 시인 이산하와 친했다. 작고한 포항 출신의 박남철 선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는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열정으로 꿈틀대고 있었지만,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그런 막막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선지 술을 많이 마셨다. 대학원 진학 후 만난 조태일 시인도 기억나는 분이다.



-대구·경북 사람이 가지는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조금은 어리석다는 거다. 어리석어서 손해를 봐도 친구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간다. 그런 어리석음이 좋다. 그게 대구·경북 사람만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친구들이 그렇다. 또 하나는 체면을 중시하고 점잖은 편이다. 서울처럼 전통사회가 해체돼 재편되었다기보다는 전통사회의 뿌리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1991년 등단해 문학평론가가 됐다. 평론가의 삶은 어떤 건가.

△문학평론가의 좋은 점은 직업적으로 책을 읽고 평을 쓴다는 거다. 그러면서 많은 시인과 작가들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삶이란 타자와의 어울림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것이데, 그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평론가는 멋진 직업이다. 시인 황동규, 소설가 김주영, 김원일, 성석제, 김연수 등을 만났고 우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 것도 행운이다.



-18년째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책은 무엇이고,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출판사를 차린 이유는 교수를 그만 두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할 수 있을만한 직업이 출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책을 만든다’는 구호를 믿지 않는다. 책이 정보를 전달하고, 정서적 위안을 주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기능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이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안 읽어도 되는 책이 훨씬 많다. 다만 좋은 책은 효율적이고 압축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게 해서, 어떤 식으로든 삶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최근 ‘남중’을 내고 ‘소설가’라는 새로운 명찰을 달았다.

△고교 때부터 쓰려고 했던 소설이다. 게으름과 삶의 분주함으로 계속 늦추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더 늦춰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중’은 내용도 그렇지만 형식을 많이 고민한 작품이다. 요즘과 같이 영상과 이미지의 전달이 쾌속으로 이뤄지는 시대에 맞는 소설 양식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남중’을 쓰며 서사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묘사를 없애고 스토리만으로 뼈대를 세운 소설이되, 독자들에게 스피디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선후배 작가들의 평가는.

△발문을 쓴 성석제는 좋다고 했고, 인터뷰를 한 작가 조용호가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했다. 몇몇 선배 작가들에겐 칭찬을 들었다. 소설가 전상국은 “묘사가 없으면서도 잘 읽히는 소설의 전범”이라 평했고, 김주영 선생은 “단숨에 읽었어, 좀 쓰네”라는 말을 전해왔다.



-독자들은 ‘남중’을 어떻게 읽었다고 하던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평이 많았고, 그게 가장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소설이 영상매체와 경쟁해 살아남으려면 독자들을 단숨에 붙잡아야 한다. 지금은 볼 게 너무 많은 시대다. 영화 ‘기생충’도 봐야 하고 유튜브도 봐야 하고, 텔레비전도 봐야 한다. SNS도 해야 한다. 소설이 어떻게 그것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일단 잡으면 소설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20~30대 젊은층에게 주목받지 못한 건 아쉽다.

 

소설 ‘남중’엔 저자의 내밀한 가족사가 가감 없이 담겼다.
소설 ‘남중’엔 저자의 내밀한 가족사가 가감 없이 담겼다.

-앞으로도 대구·경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쓸 계획이 있는지.

△내 작품의 상당 부분은 그곳을 배경으로 할 수밖에 없다. 잘 아는 곳이고, 가장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뻥’을 쳐도 잘 아는 곳에서 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자타공인 ‘문단 낚시광’이다. 낚시엔 어떤 매력이 있나.

△낚시는 치열하다. 물고기의 죽음이 나의 즐거움이 되는 이율배반적인 게 낚시다. 죽음에 희열을 느낀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몰두한다는 거다. 낚시하는 동안엔 사색하고 구상하는 뇌를 쉬게 한다. 내 경우 주로 선상 낚시를 하는데, 볼락이나 열기 낚시의 경우 소변도 참아야 할 정도로 바쁘다. 그때는 이성적 사고를 하는 나의 한쪽 뇌가 휴식하는 시간이다.



-경북 동해안의 ‘늦겨울 낚시 포인트’ 한 곳을 소개해준다면.

△포항 신항만이나 양포 쪽으로 나가면, 열기나 볼락을 많이 잡을 수 있다. 만약 내가 포항에 산다면 이 시기엔 아무 일도 못할 거다. 낚시해야 하니까. 바다가 곁에 있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올해 계획은.

△국악에 관한 책을 한 권 낸다. 집필을 거의 마쳤다. 제목은 ‘인문학으로 읽는 국악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국악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국악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덤으로 인문학 공부도 된다. 경북 동해, 즉 울진·영덕·포항·경주를 배경으로 하는 한문학사도 정리 중이다. 영덕 괴시리에서 출생한 이색(李穡)의 작품을 위시해 많은 문학 작품들, 특히 한시가 경북 동해안에서 탄생했다. 물론 이따금 낚시도 다니며 동해의 물고기와 만날 예정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홍성식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