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에서 프로 도박사로 성공한 인생역정프로기사회장으로 당선
“바둑을 가장 사랑해…자생 노력하겠다”

프로 바둑기사 차민수(69) 5단은 드라마보다 더드라마 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그의 인생을 소재로 한 2003년 SBS 드라마 ‘올인’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  담지 못했다.

차 5단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들은 은퇴하고 쉴 나이에  바둑계를 위해 총대를 멨다.

지난 13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차 5단을 만났다. 제34대 한국기원 프로기사회 임원 선거에서 55.77%의 득표율로 회장으로 선출된 지 하루 뒤였다.

차 5단은 “사실 쉬어야 하는 나이인데”라면서도 “한국기원이 없는 살림에 애(입단자)만 낳고 있다. 애가 자립할 때까지 밥 먹여서 키워야 하는데 사정이 열악하다.

기전을 유치해서 자생해야 한다”며 기사회장으로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려울 때 일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살려는 놈 도와주지  않겠나”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차 5단은 1980∼19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이민 생활 중에 밑바닥으로 내몰렸다가 프로 도박사로 성공해 다시 일어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1980년 어느 날 이혼을 당해서 거지가 됐다. 주머니에 단돈 1달러가 있더라. 석 달 걸려 1천600달러를 만들었지만, 장사를 하려면 5천달러가 필요했다. 마음이 조급하니 카지노에 갔는데 첫날 900달러를 잃었다”라고 돌아봤다.

차 5단은 망연자실한 상태에서도 바둑인답게 상황을 복기하며 실패 원인을 되짚었다. 그는 포커를 배우기는 했으나 지난 5년 동안 손을 떼고 있었는데, 자금도  없이 무턱대고 카지노에 덤벼든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차 5단은 이민 초기에 미국의 포커 전문가 칩 존슨 교수에게 바둑을 가르쳐주면서 포커를 배운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존슨 교수가 바둑을 좋아해서 교환 교습을 했다”며 “포커가 노름이  아니라 학문이더라. 기초부터 배웠는데 아내가 싫어해서 그만뒀다”고 회상했다.

차 5단은 포커로 재기에 성공해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수입 랭킹 1위를 달렸다.

한때 라스베이거스 고수들의 실력을 넘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은퇴할 생각도 했지만, 노력한다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하고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는 “이혼 이후 어머니와 누나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생긴  세상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집중이 안 되더라.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증오를 풀었더니 공부가 머리에 들어갔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차 5단은 갈 곳이 없어 친한 동생의 방에서 지내고, 차에서 잠을 자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부잣집 막내아들에서 독한 놈이 됐다”며 웃었다.

6·25 전쟁 때 유복자로 태어난 차 5단에게 그의 어머니는 ‘부모가 없어도 먹고살 재능이 있어야 한다’며 수박도와 쿵푸, 바이올린, 피아노 등 15가지 정도의 재주를 가르쳤다.

그 덕분에 차 5단은 각종 분야에 두루 능해 ‘기인’으로 불린다.

그의 아들도 운동 능력을 물려받았다. 종합격투기의 ‘코리안 좀비’ 정찬성을 지도하는 에디 차 코치가 차 5단의 아들이다.

차 5단은 “아들이 유명한 싸움꾼”이라며 “찬성이가 작년 12월 UFC 대회에서  프랭키 에드가와 싸우기 전에 ‘네가 반드시 이기니 겁먹지 말고 첫 라운드에 보내버려’라고 ‘세뇌’를 시켰는데 1라운드에서 끝내더라”라며 웃었다.

그는 2018년께 한국에 돌아와 정착했다. 지금은 본업인 바둑에 매진하고 있다.

차 5단은 “내가 배운 모든 것 중에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게 바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돈 벌기가 싫어지더라. ‘내가 이거 하려고 태어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은퇴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바둑과 후배들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게 있다.  바둑이 지금 열악하지만, 자생하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그리고 바둑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많이 홍보해드리려고 한다”며 프로기사회장으로서 각오를 밝혔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중국 최대 기전인 우정배를 창설·후원해 중국 바둑 발전에크게 기여한 경험이 있다.

차 5단은 “프로기사인데 돈이 없어서 아마추어 바둑 대회에 바둑판을  설치해주거나 고깃집에서 연탄불을 피워 돈을 버는 후배들이 있다고 한다. 좋은 머리로 프로기사가 됐는데 수입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국료 제도를 부활하고, 대회를 세분화해서 4∼5개 기전을 더 만들 것이다. 바둑 리그에도, 시니어리그에서 못 끼는 30∼40대 기사들이 제일 불쌍하다. 3040 기사를 위한 ‘샌드위치 기전’부터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