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꽝꽝한 빙판을 보면 지치고 싶어진다/ 팍팍한 세상살이 껄끄러운 마찰을 잊고/ 유착도 고착도 없이 미끄러지고 싶어진다// 숫눈의 들판을 보면 밟으며 걷고 싶다/ 낡고 찌든 세상을 덮은 순백의 전인미답/ 신생의 벅찬 설렘으로 마냥 걷고 싶어진다// 바싹 마른 풀숲에는 불 지르고 싶어진다/ 조바심으로 서걱이는 마른 풀에 불을 댕겨/ 이 세상 한 귀퉁이를 방화하고 싶어진다// 산과 들 쏘다니며 나이도 무엇도 잊고/ 걷다가 지치다가 논두렁에 불도 놓으며/ 한 마리 산짐승처럼 참 생생한 하루였다’- 졸시 ‘겨울 유희’

골목에 아이들이 없다. 시골 동네에는 아이가 사는 집이 거의 없다. 간혹 아이들이 있어도 골목에 나와 놀지 않는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집집마다 네댓은 보통이고 일곱이나 여덟인 집도 적지 않아서 방학이면 하루 종일 골목이 시끌벅적했다. 오죽하면 “시끄럽다, 딴 데 가서 놀아라!”라는 꾸중을 듣곤 했을까.

아이들이 많다 보니 놀이도 참 다양했다. 술래잡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비석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공놀이, 고무줄놀이, 공깃돌놀이, 원수놀이, 전쟁놀이, 눈싸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칠 줄 모르고 놀아도 놀 거리가 달리지는 않았다. 놀이에 소용되는 도구도 거의가 스스로 만들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은 구슬이나 고무공 정도였고, 초등학교 상급반이면 팽이를 깎고 연이나 제기, 썰매를 만들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그 때 그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웠던 것 같다. 우선은 마음껏 뛰고 구르고 노는 일이 자유롭고 즐거웠다. 방학숙제 따위 까맣게 잊고 노는 일에만 열중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먹고 입는 것이 열악해도 그것 때문에 슬프거나 괴로울 겨를이 없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단벌옷으로 겨울을 나도 방구석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지는 않았다. 놀이를 통해 우정을 쌓고 협동과 단결을 배우고 도구를 만드는 손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그때 배운 기술과 지혜를 바탕으로 국민소득 백 불 미만의 최빈국을 세계 십위 권 경제대국으로 밀어 올리는 기틀을 마련했다.

겨울방학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자.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족쇄를 풀어주고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기도 던져놓고 동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도 하고 팽이치기, 연날리기도 할 수 있게 하자. 시골의 학교를 이용해서 방학동안 놀이교실이라도 열 것을 제안한다. 일주일이나 2주일쯤 도시의 아이들이 합숙을 하면서 마음껏 놀 수 있게 놀이를 가르치고 놀이기구를 손수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를 바란다. 제 손으로 만든 연과 썰매, 제기, 팽이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면 그보다 좋은 체험학습이 없을 것이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정서도 넉넉해져서, 행복지수 OECD 꼴찌에다 5명 중 1명꼴로 자살충동을 경험했다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기쁨과 활력을 회복하기 바란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