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1)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1)
  • 등록일 2020.01.15 19:53
  • 게재일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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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무기력하게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해질녘 학원가를 향할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원주민 부족 아이의 물음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수업에서 달리기 경쟁을 시키자, 아이는 ‘누가 이길지 아는데, 왜 달리라는 거죠?’라고 반문하였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경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달리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또 달리라고 하는지 말이다.

교육 특구를 자처하는 대구 수성구의 범어동 거리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표식들이 있다. 평범한 건물의 소박한 간판 뒤에 월급쟁이 부모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고액의 개인 과외와 소그룹 과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늦은 밤,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정시 확대 결정은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 두려는 아이들까지 속출시키면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게 보인다. 종일 무기력하게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해질녘 학원가를 향할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원주민 부족 아이의 물음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수업에서 달리기 경쟁을 시키자, 아이는 ‘누가 이길지 아는데, 왜 달리라는 거죠?’라고 반문하였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경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달리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또 달리라고 하는지 말이다. 아이의 답변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현상이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의 <유년기와 사회>에 기술된 수우(Sioux)족과 유록(Yurok)족의 아이들을 차례대로 만나보도록 하자.

수우족은 미국 사우스다코타 지역의 초원을 지배하던 버팔로 사냥꾼이자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전사였다. 넓은 초원은 그들 삶의 원천이었고, 버팔로의 고기, 가죽, 뼈, 내장, 배설물은 모든 삶의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관대함’은 이들의 주요한 미덕이었고, 이는 버팔로를 사냥하며 유랑하는 삶에서 최소한의 생계 도구 외의 소유나 저장은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은 바닥날 때까지 공평하게 나누어졌고, 식량이 떨어지면 그들은 팀을 꾸려 사냥에 나서거나 식량을 나눠 받기 위해 친척을 찾아갔다. 그러했기에 보호구역의 근대식 학교를 다니던 한 아이는 그의 부모가 은행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다.

소유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수우족의 양육방식은 독특하였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아이들의 양육에 관대했는데, 수유기간이 평균 3년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초유는 짜서 바로 버려졌고, 어머니의 젖이 충분히 나올 때까지 이웃의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공동으로 넉넉히 젖을 물렸다. 에릭슨은 이를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갓 태어나 굶주린 아이가 안간힘을 다해 얻은 것이 찔끔 나온 젖 한 모금이라면, 과연 그 아이가 세상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또한, 아이들의 배뇨와 배변훈련은 매우 느슨하였는데, 보호구역의 백인 교사들은 ‘수우족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한다’며 분노하였다. 그러나 수우족의 아이들은 그들의 배설물이 초원의 태양과 바람 아래 잘 마르게끔 배설하도록 양육되었고, 수우족의 시각에서 본 서구식 화장실은 햇볕과 바람을 막으면서도 정작 파리 떼는 막지 못하는 신통찮은 것이었다. 에릭슨은 긴 수유기간과 너그러운 양육방식이 수우족의 미덕인 관대함의 바탕이 되었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수우족 아이가 근대식 학교와 교실 내의 경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반면,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던 유록족은 대서양와 만나는 클래머스강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연어잡이 부족이었다. 대서양에서 헤엄쳐 온 연어는 강의 급류를 거슬러가 상류에 이르러 알을 낳은 후 생애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산란한 치어들은 강을 내려와 다시금 대서양으로 향한다. 연어의 삶은 유록족의 삶에 깊이 녹아 있었는데, 이들에게 주요한 미덕은 ‘정결함‘이었다. 유록족은 인색하고 의심이 많으며 강박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령 강 상류에 사는 유록족은 다른 호전적인 부족이 강 하류의 유록족을 공격하러 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할 만큼 주위에 무관심했다. 이들은 사적 소유와 조가비 화폐에 익숙했고, 강을 둘러싼 수많은 강박과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사냥한 동물의 피나 사람의 분비물은 강에 섞여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성관계를 갖거나 이성과 같은 집에서 잠을 잤다면, 그들은 다음날 아침 한증막에서의 정결 의식을 통과한 후 클래머스강을 헤엄치는 것으로 정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유록족은 양육방식 또한 수우족과 판이하게 달랐다. 신생아에게는 열흘간 젖 대신 견과즙이 주어졌다. 수유는 6개월이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끊겼는데, 유록족은 이를 ‘어머니 잊기’라고 불렀다. 이후 양육은 매우 엄격하였고, 아이들은 음식에 먼저 손댈 수 없었으며 더 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식사 자리는 위아래가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은 숟가락에 음식을 조금만 올려놓고 숟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에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야 하며, 씹는 동안에는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과정 내내 돈과 연어를 생각하며 침묵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유록족의 절제된 현실과 내면화된 환상 간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록족의 내면에서 클래머스강 어귀는 연어가 밀려오는 수평선을 향해 기다림의 형태로 열려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연어 떼가 밀려와 그들에게 믿기 어려운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그 환각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결하고 절제된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환상이자, 현실에서의 예기된 보상이기도 하였다. 1년에 한 번 연어가 찾아오면 유록족은 강 양쪽 기슭에서부터 댐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댐이 완성되면 마침내 연어잡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열흘간의 축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축제 기간 동안 금기를 깨고 이교도의 의식에서나 볼 수 있는 방탕하고 난잡한 해방의 시간을 가졌다.

수우족의 불안이 ‘무력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 즉 이동하며 생활하는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두려움이었다면, 유록족의 불안은 ‘연어 떼가 돌아오지 않는 것’, 즉 양식이 없이 남겨지는 것이었다. 수우족이 관대함과 확대가족을 통한 긴장의 분산으로 그들의 불안을 이완시켰다면, 유록족은 연어 떼의 도래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긴장과 불안을 자신의 몸 안에 체화시켰다. 유록족의 쪼그라든 일상의 이면에는 거대한 환상, 즉 클래머스강 어귀에 도래한 연어 떼의 환각이 열망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두기를 마치고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본다. 겨울 방학에도 학원가에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수우족과 유록족의 사례는 각각의 맥락 내에서만 이해가능하며, 그들의 미덕인 관대함이나 정결함을 우리 사회의 미덕에 견주어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질문과 단서를 던져준다. 우리 안의 불안이 대체 무엇이기에 혹은 우리의 환상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일상은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경쟁으로 숨 막히게 짜여진 것일까? 우리에게 연어는 무엇일까?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져 버린 우리 삶의 방식과 주기가 이제 자연을 닮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하는 불안과 열망을 질문하는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넘어선 진화를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수우족과 유록족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탐색을 계속해갈 것이다. /김은영 교수

 

김은영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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