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산이나 낮은 구릉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곳에서는 땅과 바다의 높이가 거의 동일하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극복해야할 불리한 자연조건이었다. 바다의 물이 넘쳐 낮은 땅들을 삼켜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범람한 물들을 퍼내기 위해 발달한 것이 풍차이다.

땅이 낮다보니 유독 네덜란드의 하늘은 높아 보인다. 하늘에는 언제나 뭉게구름이 장관을 연출한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부서지는 햇빛은 네덜란드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런지 네덜란드의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종류의 그림들이 있다. 바로 풍경화, 인물화 그리고 풍속화이다. 사실 전통 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게 평가되었던 장르는 ‘역사화’이다. 성서나 신화 혹은 역사적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역사화라 부른다.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역사화는 주로 교회나 왕실 혹은 귀족들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런데 플랑드르로부터 독립해 세워진 네덜란드에는 왕이나 귀족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칼뱅주의가 널리 전파되면서 가톨릭에 반대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성화로 교회를 장식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더욱이 네덜란드의 집들은 협소한 땅에 지어졌기 때문에 거대한 크기의 그림을 걸 만큼 충분한 공간이 없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던 화가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종교화를 주문할 교회도 없었고, 역사화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할 왕족이나 귀족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미술시장을 개척해 간다. 주문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작품을 제작해 구입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어떤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그림을 걸어두고 판매하는 상점을 경영하기도 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를 가리켜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새로운 선박의 개발과 항해술의 발달로 대서양의 지배권을 차지한 네덜란드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땅이 좁았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투자가 튤립에 집중되면서 튤립 알뿌리 하나가 집 한 채의 가격만큼 치솟기도 했다. 이 무렵 크기는 작지만 고가였던 그림이 활발하게 거래되면서 미술시장도 빠르게 발달하게 되었다.

상업이 발달했던 네덜란드에는 ‘길드’라는 동업조합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길드들이 미술가들에게는 중요한 고객이었다. 길드 회원들의 모습을 담은 단체 초상화 주문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의 그 유명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나 ‘야경’(1642년)도 길드에서 주문한 단체 초상화였다.

네덜란드에서 발달한 또 다른 회화 장르는 풍경화이다. 화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그림에 담았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네덜란드 풍경화의 특징은 나지막하게 뻗어 있는 지평선과 넓은 하늘 그리고 그곳에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변화무쌍한 구름이다. 바다를 끼고 살았던 네덜란드 화가들이 잘 그렸던 풍경의 모티브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다풍경이다.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배를 그렸는가 하면 폭풍에 곧 뒤집힐 듯한 혼동의 순간도 그림으로 남겼다.

네덜란드 회화하면 섬세한 세부묘사와 해학이 넘치는 풍속화로 유명하다. 화가 피터르 브뤼헐(1525∼1569)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17세기 활동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얀 스텐과 같은 화가가 풍속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네덜란드에서 풍속화가 발달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풍속화는 단순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항상 근면이나 절제 혹은 도덕적 삶을 독려하는 경고나 교훈적 이야기가 숨어있다. 종교개혁 이후 ‘직업소명설’을 주장하며 근면과 성실 그리고 도덕적 삶을 강조하던 칼뱅주의가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미술은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아무리 미술가들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운명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그들이 속한 시대이다. 시대와 역사라는 조건들을 통해 그 예술적 산물인 작품들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모호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