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도(風流道)
신라의 청년들을 찾아서 ⑤

경주시 석장동 형산강에 있는 금장대의 전경. 금장대는 빼어난 경치로 유명할 뿐 아니라 선사시대 암각화를 비롯해 암벽 위에 있었던 금장사와 화랑의 수련터 등 다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경주시 석장동 형산강에 있는 금장대의 전경. 금장대는 빼어난 경치로 유명할 뿐 아니라 선사시대 암각화를 비롯해 암벽 위에 있었던 금장사와 화랑의 수련터 등 다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시인 서정주(1915~2000)는 자유로움과 조화,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풍류도’의 핵심을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가다. 숭실대학교 국문과 이경재 교수가 미당 작품에 스며있는 풍류도의 향기를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독자들을 위해 이를 게재한다.
 

풍류의 핵심적인 특징으로는 ‘걸림 없는 자유로움’,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대조화(大調和)의 세계’, ‘유연하고 여유로운 삶의 자세와 이를 통한 미의 추구’ 라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풍류(風流)라는 단어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 즉 예술성이나 심미성을 지향하며 노는 것을 말한다. 품격의 고상함을 지닌 자유인의 생활이 풍류인 것. 그러나 도(道)라는 말이 붙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풍류에는 단순하게 정의될 수 없는 심오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풍류라는 말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를 보면 풍류란 한민족의 가장 종지가 되는 사상체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진흥왕조(眞興王條)에 등장하는 ‘난랑비서’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을 옮긴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가르침을 베푸는 바탕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그 실제 내용은 유·불·도 삼교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종합하여 온갖 생명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화랑도(花郞徒)의 지도이념이기도 했던 풍류도는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교만이 아니라 고유 신앙을 기반으로 하면서 외래 종교인 유교와 불교 및 도교의 종지를 포함하는 거대한 사상으로서 모든 생명을 교화하였다. 이후에도 풍류에 대한 개념 규정은 최남선, 김범부, 안호상, 양주동 등의 석학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들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풍류(도)의 핵심적인 특징으로는 ‘걸림 없는 자유로움’,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대조화(大調和)의 세계’, ‘유연하고 여유로운 삶의 자세와 이를 통한 미의 추구’라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풍류도를 가장 깊이 있게 형상화한 현대 문인으로는 미당 서정주를 손꼽을 수 있다. 서정주는 여러 산문을 통해 풍류의 의미와 가치를 진지하게 논의하였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풍류를 논한 글만 정리해보아도 ‘한국 시정신의 전통’, ‘한국적 전통성의 근원’, ‘신라문화의 근본정신’, ‘신라의 영원인’, ‘풍류’, ‘전라도 풍류’ 등을 들 수 있다. ‘한국 시정신의 전통’에서는 풍류가 “우주적 무한과 시간적 영원”을 근거로 하며, “인간주의가 아니라, 우주주의적 정신의 표현이요, 현재적 현실주의가 아니라 사람을 영생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 데서 온 영원주의 정신의 나타남”이라고 규정한다. ‘한국적 전통성의 근원’에서는 풍류도를 “영통주의(靈通主義)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신라문화의 근본정신’에서는 풍류도의 근본정신으로 “천지전체를 불치의 등급 따로 없는 한 유기적 연관체의 현실로서 자각해 살던 우주관”과 “등급 없는 영원을 그 역사의 시간으로 삼는 것”을 들고 있으며, 전자와 후자는 각각 “우주인, 영원인으로서의 인격”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신라의 영원인’에서는 “사람의 생명이란 것을 현생에만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서 생각하고, 또 아울러서 사람의 가치를 현실적 인간사회적 존재로서만 치중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존재로서 많이 치중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풍류’에서는 “현실을 바닥과 구석에 닿게 가장 질기게 살 뿐만이 아니라 자손만대의 영원을 현실과 한 통속으로 하여 어떤 경우에도 이어서 안 죽고 살아가려는 정신의 요구를 따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미당은 영원주의와 우주주의로 정리되는 풍류도가 매우 의미 있는 정신으로 오늘날에 새롭게 부활해야 한다는 입장. 그것은 ‘신라문화의 근본정신’에서 민족의 일을 경영하고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라의 풍류도는 아직도 크게 필요한 힘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질마재 神話’(一志社, 1975)는 미당이 그토록 강조한 풍류도가 직접적으로 형상화 된 실례다.

질마재의 정식 명칭은 전북 고창군 선운리(仙雲里)이고, 이곳은 약 150호 정도의 집이 있던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서정주는 열 살 무렵 줄포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시집 ‘질마재 신화’는 이곳 사람들과 풍물들을 바탕으로 해서 창작되었다. 그것은 약간의 변형을 가해져 시로 수용되기도 했지만, 있는 그대로 시로 수용되기도 했다. 간통사건과 연날리기 이야기, 외할머니집에 해일이 들던 일, 도깨비집 할머니 이야기, 석녀 함물댁 이야기, 小者 이생원네 마누라 이야기 등은 시인이 어려서 실제로 보고 겪은 이야기들이다. (‘질마재’, ‘서정주 문학 전집’ 3, 일지사, 1972) 이러한 이야기들은 ‘姦通事件과 우물’, ‘紙鳶勝負’, ‘海溢’, ‘말피’, ‘石女 한물宅의 한숨’, ‘小者 李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 등의 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질마재 신화’에서는 인간과 인간, 나아가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경계를 설정할 수 없는 대조화(大調和)의 세계가 자주 펼쳐진다. ‘海溢’에서는 수십 년 전 바다에서 죽은 외할아버지가, 때가 되면 바닷물이 되어 외할머니를 방문한다. ‘李三晩이라는 神’에서는 이삼만의 붓 기운이 시공을 뛰어넘어 뱀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石女 한물宅의 한숨’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해 자진해서 남편에게 소실을 얻어 주고, 언덕 위 솔밭 옆에 홀로 살던 한물宅이 자연과 감응하며 사는 모습이 잔잔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이 우주적 차원에서 한데 어우러지기에, 인간의 생명력은 자연의 생명력으로 전환되고는 한다. ‘小者 李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에서 이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은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난 무밭을 만들어 내는 생명력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시인은 오줌 기운을 강조하기 위해 신라시대 지도로대왕비(智度路大王妃)의 ‘長鼓만한 똥’과 이 생원네 마누라님의 무를 비교하고 있다. 똥을 수식하는 말로 장고가 등장한 이유는 장고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신바람을 나게 하는 악기라는 사실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알묏집 개피떡’에 등장하는 알묏댁도 자연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자기 안에 담고 있는 존재다. 그녀는 보름달이 뜰 무렵의 보름 동안은 서방질을 하고, 달이 없는 그믐께부터는 마을에 떡을 판다. 그런데, 그녀의 떡은 맵시며 맛이 너무나 뛰어나 “손가락을 식칼로 잘라 흐르는 피로 죽어가는 남편의 목을 추기었다는 이 마을 제일의 烈女 할머니”까지 알묏댁을 칭송하게 된다. 생명력을 바탕으로 미적 경지로 승화된 떡 앞에서, 열녀로 표상 되는 도덕조차 꼼짝하지 못 하고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소 X 한 놈’는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수간(獸姦)이라는 어이없는 행동을 저지른 총각 놈을 묘사하는 시인의 태도다. 그는 “品行方正키로 으뜸가는 총각놈이었는데, 머리숱도 제일 짙고, 두 개 앞이빨도 사람 좋게 큼직하고, 씨름도 할라면이사 언제나 상씨름밖에는 못하던 아주 썩 좋은 놈이었는데, 거짓말도 에누리도 영 할 줄 모르는 숫하디 숫한 놈”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간 사실이 들통나 사라진 그를 보며, 화자는 “그 발자취에서도 소똥 향내쯤 살풋이 나는 틀림없는 틀림없는 聖人 녀석이었을거야”라고 말한다.

‘틀림없는’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강조하는 화자의 태도에 비꼼과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아가 질마재의 사람들은 유연하고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바탕으로 심미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은 ‘소망(똥깐)’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시에서는 배설 행위조차 나름대로 운치 있는 미적 행위로 전환된다. “이것에다가는 지붕도 休紙도 두지 않는 것이 좋네, 여름 暴注하는 햇빛에 日射病이 몇 千 개 들어 있거나 말거나, 내리는 쏘내기에 벼락이 몇 萬 개 들어 있거나 말거나, 비 오면 머리에 삿갓 하나로 응뎅이 드러내고 앉아 하는, 休紙 대신으로 손에 닿는 곳의 興夫 박잎사귀로나 밑 닦아 간추리는-이 韓國 ‘소망’의 이 마지막 用便 달갑지 않나?”라는 대목에서, 용변을 보는 화장실과 그 행위는 멋진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창작 행위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예술적 아우라를 풍긴다. ‘上歌手의 소리’의 주인공도 똥오줌 항아리를 명경(明鏡)으로 몸단장을 하는 처지이지만, 그 노랫소리는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할 만큼 빼어나다. 주목할 것은 그러한 빼어남이 다름 아닌 “明鏡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지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현실의 불우를 참된 예술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극적 아이러니와 역설의 미학이 번뜩인다. 기존의 사회 규범이나 질서를 부정하며 내적인 가치의 완성에 골몰하는 그들이기에, 자잘한 세속의 명리나 승부 따위는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 한다. 그것은 지상으로부터의 마지막 속박이라 할 수 있는 실마저 끊어져 아무런 걸림 없이 날아가는 연의 이미지에 응축되어 있다. ‘지연승부(紙鳶勝負)’라는 시가 바로 그것.

그렇지만 選手들의 鳶 자새의 그 긴 鳶실들 끝에 매달은 鳶들을 마을에서 제일 높은 山 봉우리 우에 날리고, 막상 勝負를 겨루어 서로 걸고 재주를 다하다가, 한 쪽 鳶이 그 鳶실이 끊겨 나간다 하드래도, 敗者는 ‘졌다’는 歎息 속에 놓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解放된 自由의 끝없는 航行 속에 비로소 들어섭니다. 山봉우리 우에서 버둥거리던 鳶이 그 끊긴 鳶실 끝을 단 채 하늘 멀리 까물거리며 사라져 가는데, 그 마음을 실어 보내면서 어디까지라도 한번 가 보자던 전 新羅 때부터의 한결 같은 悠遠感에 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의 生活에 실패해 한정없는 나그네 길을 떠나는 마당에도 보따리의 먼지 탈탈 털고 일어서서는 끊겨 풀려 나가는 鳶같이 가뜬히 가며, 보내는 사람들의 인사말도 ‘팔자야 네놈 팔자가 상팔자구나’ 이쯤 되는 겁니다.

이 시에서 그려진 연의 모습은 질마재 사람들들이 가 닿은 마지막 세계의 모습이다. 그것은 ‘질마재’라는 수필의 마지막이 바로 이 연날리기로 끝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패배하지만 그것을 통해 사실은 더 깊은 자유와 여유를 얻게 됨을 이르는 것이다. 실이라는 물질적 질곡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아무 것에도 걸림 없는 무한한 자유를 얻고 있는 것이다. 실이 끊긴 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마지막 연에서 생활에 실패해 한정 없는 나그네길을 떠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모된다.

이 나그네를 향해 던지는 사람들의 인사말 “팔자가 네놈 팔자가 상팔자구나”라는 말은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것은 세속의 승부나 성공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한한 자유, 바로 풍류도인 것이다.

연실이 끊어지는 것은 현실적 패배인 동시에 현실의 여러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연실이 끊겼다는 패배의 고통 속에서 “어디까지라도 한번 가 보자던 전 新羅 때부터의 한결 같은 悠遠感”에 젖는 모습은, 현실의 고통을 유유자적함으로 승화시킨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연의 자유로운 이미지 속에 응축된 풍류도의 모습은 ‘질마재 신화’ 이후 ‘떠돌이의 시’(1976),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노래’(1984), ‘산시’(1991) 등을 통해 표출되는 열린 세계를 소요하는 떠돌이 미당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이경재 문학평론가

1976년 인천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문예지 ‘문학수첩’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단독성의 박물관’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 ‘한국 현대 문학의 개인과 공동체’ 등의 책을 썼으며, 제29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