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가르치는 정치논리
고전에서 가르치는 정치논리
  • 등록일 2018.08.29 20:47
  • 게재일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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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원리를 물었다.

공자는 정치의 원리를 첫째로 인민의 생계대책, 둘째로 치안과 국방, 마지막으로 인민의 신뢰를 들었다. 자공이 상황에 따라 하나를 포기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공자가 치안과 국방을 먼저 포기하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부득이한 상황에서 남은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공자가 생계대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지만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하였다.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나 운용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국가의 권위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위아래가 서로에 대해 믿지 못하면 결국 믿을 것은 내가 또는 우리가 가진 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국가의 기강이 혼란하고 정치의 권위가 사라진 곳에는 돈이든 권력이든 물질이든 그것을 가진 자는 결국 그 힘을 폭력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또한 그것에서 소외된 계층은 폭력에 희생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폭력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다. 혁명이란 그래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위아래가 서로 믿는 사회가 되려면 조금이라도 더 권력이 많고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믿음을 보여야 한다.

믿음을 얻는 길은 자기 이름을 회복하는 데 있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관료들은 관료라는 위치에서, 정치인들은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름을 세워 진리를 찾는다는 말잔치는 결국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피해만 자초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지식의 유희에 빠져 함부로 사실을 합리화하는 어리석은 실수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자는 위정자들이 다섯 가지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네 가지 악덕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른바 4악덕(四惡德)’이다.

그 첫째가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은 잔학한 것이다. 이 말은 사전에 미리 가르쳐 주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죽이는 경우이다.

두 번째가 미리 경계해 놓지 않고서 일의 완성을 재촉하는 것은 난폭한 것이다. 즉 일의 성과가 어느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지도 않고 성과가 미달했다고 몰아치는 경우이다.

셋째로 소홀하게 명령해 놓고 시기를 꼭 대도록 기대하는 경우이다. 기간을 정해서 명확하게 명령을 내리지도 않고 기한을 재촉하는 것은 모진 것이다.

넷째로 고루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있어 내고 들이는 것을 인색하게 하는 것을 유사(有司)라고 한다. 즉 베푼다고 하면서 실제로 예산을 나눠 주는데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지나치게 따지고 인색하게 구는 것은 정치인의 취할 바가 아니라 사사로운 모임의 유사나 할 처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상관없이 무조건 벼슬에 집착한다.

이러한 결과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분류한 아홉 가지 위정자들의 모습이다. 굳이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국민의 눈에는 거의 모든 여야정치인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복숭아 두 개로 용사 셋을 죽였다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의 고사가 있다. 세 명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면서 공이 있는 사람이 가지라고 했는데, 서로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복숭아를 다투다가 결국 부끄러움에 자결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교묘한 계략으로 상대를 제거한다는 고사지만, 적어도 그들처럼 명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만큼 염치를 지닌 위정자들이 요즘 시대에 몇이나 있겠는가.

시사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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