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례 양동댁 사랑채, 양동댁 본채 평면도
전통 한옥과 필자의 첫 만남은 36년전 일산 정경운(一山 鄭慶雲)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수천 년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가 쌓인 한옥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 속에서 삶의 간접 체험도 수없이 많이 할 수 있었다. 그 집이 지닌 이치를 터득하려면 그 집에 담긴 내용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고 일러주신 일산의 말씀도 알게 되었다. 안동에서 유명한 명문가로 흔히 진성 이씨, 풍산 류씨, 의성 김씨 집안을 꼽는데 진성 이씨는 글 잘하는 선비가 많고, 풍산 류씨는 벼슬이 많으며, 의성 김씨는 대대로 입바른 선비가 많다고 한다.

1985년 임하댐 수몰지역 지표조사를 하던 중 포항공대 초대학장 고 김호길 박사의 생가 `양동댁`이 있는 지례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 집 앞에 다다르니 문 앞까지 김호길 박사의 부모님이 나와 계셨다. 김 박사의 모친에개서 김 박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집에는 김 박사의 여동생도 함께 계셨다. 세계적 석학 김 박사는 양동댁의 아들넷, 딸 넷 8남매 중 셋째였고 다섯째가 김영길 박사(한동대학교 총장)이다.

지례마을은 삼십리를 걸어 나가야 신작로가 나오는 심심산골이었다. 그곳에 위치한 양동댁은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杰)의 중형인 김방형이 분가하면서 현종 4년(1663)에 지은 집이다. 후대에 와서 지곡 김정한의 후손인 수산 김병종(秀山 金秉宗)의 집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사랑방 인방위에는 김병종의 호에서 유래한 `수산재(秀山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동댁은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는 본채와 사당과 외양간이 남아 있다. 본채는 `ㅁ`자형 평면을 이루면서 전면 좌측으로 사랑채가 돌출해 있다. 안채는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곡식을 보관해두는 도장이 달린 안방과 고방이 마련되어 있으며, 대청 전면 우측으로 여모중방에 쪽마루를 붙여 며느리가 거처하는 상방에 이르도록 한 것이 이채롭다.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모방(작은방)과 마루방, 우측에 사랑방과 사랑마루, 그 뒤에 책방을 두었다. 이 집은 경상북도 북부형 민가의 양식을 잘 간직하면서도 안채 대청 우측의 우물마루방(고방)은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 아닌 양식이다. 그리고 사랑채의 모방 우측에 달린 우물마루방 또한 보통은 북부형 민가의 외양간 자리인데 외양간이 독립되면서 생긴 독특한 평면구성으로 귀중한 유구로 생각된다.

금세기 세계적인 석학이 출생한 이 집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8호로 지정되었고 1988년 임동면 지례리에서 현재의 안동 임하면 임하리로 이건하여 보존되고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출생한 양동댁을 수몰에서 지켜내 경북도 민속자료로 보존하고 있다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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