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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대중화의 개척자 ‘외솔’이 완성한 한글과 한옥도서관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12-17 19:45 게재일 2024-12-1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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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한옥도서관(울산시 중구 병영7길 36)의 기와 지붕이 날아갈 듯 아름답다.

한옥으로 지은 도서관이 있다고 해서 길을 나섰다. 감포의 한옥 등대도 특별했는데 도서관이 기와를 얹었다니 궁금했다. 이름도 ‘외솔’이라니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싶었다. 동행한 역사 교사인 남편이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의 호가 외솔이라면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입구에 우뚝 서서 두루마기를 걸치고 책을 펼쳐 든 동상이 학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귀가 외솔기념관 문 앞에 나붙었다. 세종대왕님을 만났을 때, 한글과 한옥을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실 거다. ‘한글’이란 말은 1913년부터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옥도서관을 보기에 앞서 한글이란 말을 만드신 어르신 외솔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은 언어학자 주시경의 수제자였다. 주시경 선생은 한글 표준화를 추진하였고, 세로쓰기였던 한글을 가로쓰기로 바꿨다.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개척자이자 선각자다. “나무가 자라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요, 그 나무를 가꾸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말을 다듬어서 바르게 말하고 적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뜻을 이어 최현배 선생은 풀어쓰던 한글을 모아쓰게 했다.

외솔은 조선어사전 편찬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상무위원,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 위원, 표준말 사정 위원을 거쳐 다른 학자들과 더불어 이론적 뒷받침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광복 후에는 한글학회 이사장으로서 미국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아 큰사전 6권을 완간했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앞두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갖은 고문을 버티며 함흥형무소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옥중에서도 한글 풀어쓰기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켜낸 우리 말글 보급에도 힘썼던 선생은 한글 기계화에도 앞장섰다. 한글 기계화를 위해 우리말에 쓰이는 글자와 낱말의 사용 빈도를 조사하여 타자기 자판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통계자료를 만들었다.

기념관을 돌며 해설사의 설명까지 곁들였더니 외솔 선생의 업적이 한눈에 보였다. 핸드폰에 한글을 편하게 적을 수 있는 것도 선생과 학자들이 애쓴 덕분이라니 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기념관을 나와 계단을 오르니 울산큰애기 동상 뒤에 선생의 생가가 보였다. 최현배 선생이 17세가 될 무렵까지 사신 곳이라고 한다. 외솔 선생 탄생 122주년을 맞아 2016년에 울산광역시는 최초의 한옥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선생이 보신다면 한옥이라 더 반가워할 것이다.

날씨가 쌀쌀했는데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방바닥이 따끈따끈하니 참 좋았다. 들어가자 여느 도서관과 다르게 좌식 나무 책상이 놓였고 바닥에 앉아 책을 보도록 했다. 조선시대 교육의 근원인 서원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전통 한옥도서관이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책 읽어주는 로봇 ‘루카’였다. 귀여운 로봇이 영유아 대상으로 전문 성우의 목소리로 실감 나는 효과음과 함께 책을 읽어준다고 하니 너무 멋지다.

감탄하며 책장을 살피는데, 사서가 한옥의 백미인 문살이 아름다운 미닫이문을 열었다. 따뜻한 실내와 달리 찬바람이 훅 들어오는 외솔채였다. 온돌이 아닌 마룻바닥이라 서늘했다. 하지만 양쪽으로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경치가 그저 그만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책을 들고 외솔채에 앉아 한나절 풍월을 읊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였다. 도서관에서 옛 선비들이 누리던 호사를 즐길 수 있는 울산 중구 사람들이 부러웠다. 도서관을 나오는 데, 꼬마 둘이 돌계단을 오른다. 공부하러 오느냐고 물으니 “아니요, 책 읽으러 왔어요.” 책이 공부가 아닌 놀거리라니, 외솔 선생이 흡족하게 웃으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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